화가들의 꽃
앵거스 하일랜드, 켄드라 윌슨 지음 | 안진이 옮김 | 푸른숲 | 168쪽 | 2만2000원
장미 향에 취한 걸까. 붉은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인이 장미 한 송이를 입 맞추듯 얼굴 가까이 대고 살짝 미소 짓는다.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 제목 ‘장미의 영혼’(1908·그림)은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 ‘모드’(Maud·1855)에서 따왔다. ‘장미의 영혼 피 속에 흘러들어(…)/ 난 정원 호수 옆에 오래 서 있었네.’ 피 속에 흐르는 장미의 영혼 때문인지, 여인의 뺨은 장미와 같은 분홍빛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보티첼리부터 현대의 호크니까지, 화가 48명이 개성 뚜렷한 시선으로 보고 그린 꽃 그림 108점을 담았다. 그림과 화가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만날 수 있다.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의 ‘창가의 사프라노 장미’(1925)는 의외로 창밖 하늘처럼 부드러운 분홍과 빨강. 프랑스 북부 출신인 그가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남불 코트다쥐르의 햇빛이 방 안에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계 미국인 화가 존 싱어 사전트의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1885~86)는 잉글랜드 전통 마을 지역인 코츠월드의 템스강변 한 마을에서 지내며 2년간 그린 그림. 희미해지는 황혼 녘 햇빛 속에 꽃들이 빛나는 순간, 손에 든 등불의 빛이 두 소녀의 뺨도 꽃처럼 물들인다. 다른 세상 풍경인 듯 로맨틱하다.
두꺼운 붓질로 윤곽선을 흐리는 포토페인팅 기법으로 꽃잎의 대비가 더 선연해진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난초’(1997), 빛과 그림자로 정물화에 연극적 생동감을 부여한 윌리엄 니컬슨의 ‘시클라멘’(1936)…. 그림 곁에 화가가 꽃에 대해 남긴 말을 음미하며 꽃을 그릴 때의 그 마음을 상상해 보는 것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