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기 침체 탓인가, ‘홍콩의 중국화’에 대한 미술 시장의 우려 때문인가.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 2024′가 닷새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지난 30일 막을 내렸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은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로 열렸지만, 관람객 숫자도 판매 실적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트바젤은 30일 밤 보도 자료를 내고 “VIP 프리뷰(3월 26~27일) 및 일반 공개(3월 28~30일) 기간 전 세계에서 7만50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았다”고 발표했다. 8만6000명 이상이 방문한 지난해에 비해 12% 정도 줄어든 셈이다.
◇'오픈 런’ 없고 서구 큰손 컬렉터 줄어
지난 2013년 시작된 아트바젤 홍콩은 매년 8만여명이 찾고, 약 1조원 규모의 미술품이 거래되는 국제 아트페어다.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엔 온라인으로 진행됐고, 2021~2022년에도 파행을 겪다가 작년부터 회복세로 접어들었다.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트바젤 홍콩 2024′는 올해 아시아 미술 시장을 가늠할 지표로 일찍부터 기대를 모았다. 지난해 32국 177갤러리가 참여한 행사가 흥행을 거뒀기 때문에 올해는 몸집을 더 키웠다. 작년보다 참여 갤러리가 37% 늘어나 아시아·태평양·유럽·미주·아프리카·중동의 40국 242갤러리가 참여했다. 갤러리 중 23곳은 아트바젤 홍콩에 처음 참가했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하지만 VIP 프리뷰 첫날부터 썰렁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현장에서 만난 국내외 갤러리 관계자들은 “오픈 런도 없었고, 서구 큰손 컬렉터들도 많이 보이지 않아 깜짝 놀랐다”며 “분위기가 좋았던 작년에 비해 확 달라진 걸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일반 관람이 시작된 28일 오후에도 관람객들이 붐비지 않았다. 한 국내 갤러리 관계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당황했다. 서구 컬렉터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예전에 비해 아시아 관람객 비중이 높아진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라며 “아트바젤 홍콩이라는 브랜드가 워낙 위상이 높으니 쉽게 무너지지 않겠지만, 내년엔 달라진 환경에 대비해서 나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갤러리 간 양극화 뚜렷
불황 속에서도 세계적인 블루칩 스타 작가들의 작품은 속속 팔려나갔다. 올해의 승자는 세계적인 메가 화랑 하우저 앤드 워스(Hauser & Wirth). 스위스 취리히를 거점으로 뉴욕, 런던, LA, 서머싯, 홍콩 등에 지점을 두고 있는 이 갤러리는 첫날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윌렘 드 쿠닝의 ‘무제 III’(1986)를 900만달러(약 121억원)에 판매해 올해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필립 거스턴의 회화를 850만달러(약 115억원), 마크 브래드퍼드의 신작도 350만달러(약 47억원)에 판매하는 등 첫날에만 수백억원의 실적을 냈다.
참가 갤러리 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 갤러리였다. 한국에서는 국제갤러리, 아라리오, 갤러리바톤, 학고재, 조현화랑, PKM 갤러리, 원앤제이 갤러리 등 10곳이 참여했다. 국내 갤러리 중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제갤러리는 김윤신·강서경·박서보·하종현·다니엘 보이드 등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고루 판매하는 성과를 냈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아시아권 컬렉터들의 방문이 두드러졌고, 특히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 참가를 앞두고 있는 김윤신의 인기가 대단했다”고 했다.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김윤신은 이번 페어에서 조각 4점, 회화 5점이 모두 팔려 ‘지금 가장 뜨거운 작가’임을 입증했다.
대형 설치 작품 16점을 소개한 ‘인카운터스’에선 한국 작가 양혜규의 ‘우발적 서식지’가 관람객을 모았다.
◇‘홍콩 중국화’에 대한 우려
올해 아트바젤 홍콩이 기대 이하 실적을 낸 이유가 뭘까. 현장에선 “세계 경제 불황의 여파”가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하지만 ‘홍콩의 중국화’에 대한 반감과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아트바젤 개막을 불과 일주일 남긴 지난 19일 홍콩 국가보안법이 홍콩 입법회를 통과하면서 미술 시장에서 불안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중국에 대한 반감이나 불안감이 생각보다 커서 참가를 포기한 서구 컬렉터가 많다”며 “홍콩에 자리 잡았던 글로벌 기업들이 홍콩을 떠나는 영향도 큰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