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이 6일 서울 코엑스에서 1300년 만에 확인된 신라 태자의 동궁 터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동궁과 월지’는 신라 전성기에 만든 궁궐 유적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30대 임금 문무왕(재위 661~681) 때인 서기 674년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었으며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나온다. 5년 뒤엔 ‘동궁(東宮)을 짓고 처음으로 궁궐 안팎 여러 문의 이름을 지었다’고 기록했다.

서기 679년 건립한 신라 태자의 독립적 공간이 1300년 만에 처음으로 확인됐다. 국가유산청은 “신라 왕경의 토목 기술이 집약된 동궁의 원래 위치를 찾았다”며 “태자의 공간인 동궁이 그동안 알려졌던 것처럼 월지(月池·옛 안압지)의 서쪽에 있는 대형 건물터가 아니라 월지 동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6일 밝혔다.

새로 찾은 동궁지 대형 건물터 전경. /국가유산청

그동안 학계는 월지의 서쪽을 동궁 터라고 여겨왔다. 1970년대 월지 일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679년을 뜻하는 ‘의봉 4년(儀鳳四年)’을 새긴 기와 등이 출토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지의 서쪽 터는 주변보다 높게 조성된 땅 위에 있고 건물의 위계도 높아서 동궁이 아니라 왕의 공간일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최근 조사로 월지 동쪽에서 서쪽보다 위계가 낮은 대규모 건물터 흔적이 발견돼 이곳이 동궁이고, 당초 동궁으로 추정했던 터는 왕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냈다”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새롭게 확인된 동궁에서는 복도식 건물에 둘러싸인 건물 터와 함께 넓은 마당, 내부에 별도로 조성된 원지(정원 안의 연못) 흔적이 나왔다. 중심 건물은 정면 25m, 측면 21m 규모.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동궁 건물은 대지를 조성하는 단계부터 왕과 태자의 공간이라는 위계 차이를 두고 경관 조성도 계획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월지 주변에서 확인된 유물도 비로소 주인을 찾게 됐다. 2017년엔 상아(코끼리 엄니)로 만든 주사위가 발견됐고 2022년에는 순도 99.9% 금박에 한 쌍의 멧비둘기와 꽃을 정교하게 새긴 8세기 유물이 나왔다. 국가유산청은 “주사위는 희귀한 상아로 제작한 고급 놀이기구이고, 얇게 편 금박에 머리카락 굵기의 절반 가량(0.05㎜) 되는 선으로 새 두 마리와 꽃을 새긴 유물은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 세밀함의 극치”라며 “두 유물이 출토된 곳이 이번에 찾은 ‘진짜 동궁’의 북쪽이다. 태자가 생활한 공간으로 추정되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사적 '동궁과 월지'.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야경 명소다. /경주시

학계에선 이번 발굴 성과를 토대로 ‘동궁과 월지’라는 사적 명칭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발굴 자문에 참여한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신라사)는 “이번 발굴 결과는 신라가 통일 시기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그 동쪽에 동궁을 지었다는 삼국사기 기록과도 맞아떨어진다”며 “월지가 동궁의 관할과 소속이 아니고, 월지를 포함한 궁의 범위가 굉장히 넓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만큼 ‘왕궁과 월지’로 명칭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발굴 성과를 종합해볼 때, 월성의 입지는 좁아지게 됐다. 월성은 신라 건국 초기부터 멸망할 때까지 지속된 궁성으로 지난 2014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됐지만, 대형 궁궐 건물 터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만약 월성에 궁궐이 있었다면 월지에서처럼 귀면와(鬼面瓦)라든지 부속 유물이 많이 나왔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발굴 성과를 보면 그렇지가 않다”고 했다. 주보돈 교수는 “월성은 지금까지 발굴된 건물 구조나 초석을 볼 때 기대했던 것만큼 위엄 있는 정무 공간이 들어설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며 “월성이 초기 왕궁의 중심이었지만 통일기에 들어서면 중심지가 월지 주변으로 옮겨간다는 걸 최근 발굴 성과가 보여준다”고 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이 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월성 유적에서 발견된 의례 흔적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국가유산청은 이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지난 10년간 신라 왕경 핵심 유적을 발굴 조사한 성과를 총망라해 공개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월성’과 ‘동궁과 월지’ 등 핵심 유적 14개소 발굴에 투입된 예산은 총 2902억원. 경주 월성 유적 서남쪽 취락 끝자락에선 의례 흔적이 추가로 발견됐다. 지난해 10월 신라 성립 이전 3세기 사로국 시대에 의례 제물로 바쳐진 개의 뼈가 확인된 데 이어, 추가 조사에서 또다른 개 한마리의 흔적과 함께 수정 목걸이가 담긴 나무상자, 둥근고리칼, 상어 이빨, 콩 1200여 알이 나왔다.

지난해 10월 경주 월성 유적 서남쪽 취락 끝자락에서 발견된 개의 뼈. /국가유산청
월성 유적 서남쪽 취락 끝자락에서 추가로 확인된 개 한마리 흔적. /국가유산청
수정 목걸이가 담긴 나무상자가 발견된 모습. /국가유산청

연구소는 “특히 옻칠된 나무 상자 속에서 확인한 수정 목걸이에는 수정이 꿰어진 실까지 남아있었다”며 “향후 사로국 시기 신라의 의례 모습을 밝히는 주요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