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김병기(1916~2022)는 작가이면서 예술 행정가였다. 1964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으로 당선된 그는 이듬해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가 됐다. 김병기는 출품 작가로 30대 박서보, 김창열, 정창섭을 우선 선정했고, 이후 권옥연, 이세득, 이응노, 김종영을 추가했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명예상을 받은 김환기는 특별전 형태로 참여했다.
김병기 작고 3주기를 맞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김병기와 상파울루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그가 커미셔너를 맡았던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를 재현하는 전시다. 당시 비엔날레 출품작을 비롯해 출품 작가들의 1960년대 초·중반 작업을 소개한다.
특히 김환기의 ‘에코’ 연작 3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환기는 당시 ‘에코’ 연작 9점을 포함해 작품 총 14점을 출품했으나 운송비를 지불하지 못해 모두 압류돼 경매에 부쳐지는 수모를 겪었다. 미국의 지인이 모두 낙찰받으면서 뒤늦게 되찾을 수 있었다.
전시에는 ‘에코 1’ ‘에코 3’ ‘에코 9’가 나왔다. 이 중 ‘에코 1’ 뒷면에는 비엔날레 출품 당시의 원본 태그가 남아있다.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1985년 뉴욕에 있던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 여사에게서 직접 구입해 한국으로 들여왔다. 이 회장은 “‘에코’ 시리즈는 김환기의 뉴욕 시대를 여는 작품이자, 본격적인 추상 회화가 시작되는 연작이고, 이후 시작될 전면 점화를 예고한다”고 했다.
숨은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 회장이 “유독 ‘에코 1’만 크기가 작고 이미지가 단순하다”고 했더니, 김향안 여사가 “모르는 소리 마라. 크기는 작아도 이 작품이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여기 그려진 가로, 세로의 선과 점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바로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한다.”
김창열의 ‘물방울 회화’가 등장하기 이전, 전혀 다른 화풍도 볼 수 있다. 김병기 작품 10여점도 소개한다. 20일까지. 관람료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