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는 한동안 조용했다. 서구화의 기세에 밀리고, ‘전통’이란 무게에 눌려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살짝 비켜나 있었다. 중국화는 거대한 산수와 장대한 붓놀림으로, 일본화는 세밀하고 화려한 채색으로 선명하다. 그런데 ‘한국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희미하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채색화는 ‘왜색’이라 폄하당했고, 신문인화풍은 청말 중국화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화가들에게는 ‘전통 계승’이라는 당위만이 무거운 숙제로 남았다.

지난 2월 국립현대미술관과 중국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수묵별미’ 전시는 수묵이라는 재료로 빚어낸 ‘별미(別味)’를 눈으로 맛보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 본질은 공통된 기반 속에서 양국 회화가 지닌 ‘다른 아름다움(別美)’을 발견하려는 데 있었다.

덕수궁관에 전시한 양국 수묵화는 비교 속에서 더 뚜렷해졌다. 중국이 전통 기법과 화면 구성을 현대적으로 확장했다면, 한국화는 서구와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과감하게 끌어안았다. ‘전통’을 마주하는 두 나라의 태도가 다르듯, 수묵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모습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화는 서양화의 조형 언어와 재료를 수용하며, 추상적 구성과 실험을 통해 전통 수묵화의 경계를 넓혀왔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화가 고립된 장르가 아니라, 동시대 미술의 흐름 안에서 유연하게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필묵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한 한국화는 지금 완전히 새로운 수묵의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그것은 단절된 전통을 회복하고, 동시대 시선으로 재구성하는 한국 미술의 정체성 찾기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화는 더 이상 무엇의 변주가 아니다. 서구와 일본, 중국의 영향 속에서 유연하게 성장해 온 한국화는 그 자체로 주체적인 담론을 이끌어갈 힘을 갖췄다. ‘전통이 오늘의 언어로 다시 쓰인 대표적 사례’―그것이 지금의 한국화다.

서울 전시는 6월 베이징으로 이어진다. 중국판 ‘수묵별미’가 서로 다른 수묵 전통이 만나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국제 교류는 동일함이 아닌 ‘다름’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문화적 대화의 시작이다. 문화는 때로 정치보다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