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부담이 심하던 19세기 세도정치 시대에, 일족 중 가난해서 세금을 못 내는 일이 없도록 문중 전체에서 기금을 마련했던 사실을 보여주는 문서가 발굴됐다. 고창석 전 한국고서협회장은 1836년(헌종 2년) 경북 안동 하회마을 풍산 류씨 가문의 문중계(門中契)에서 제작한 문서인 ‘의장절목(義庄節目)’을 최근 입수해 본지에 공개했다.

문중 차원에서 세금 납부를 위해 기금을 조성한 자료인 1836년 풍산 류씨 가문의 '의장절목'. /고창석 전 한국고서협회장 제공

이 문서는 문중계를 만드는 목적에 대해 ‘류씨 문중에서 세금과 환곡(還穀·곡식을 백성들에게 봄에 꿔 주고 가을에 이자를 붙여 거둔 제도), 부역(賦役·국가가 보수 없이 백성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노역)에 필요한 자금을 해결하기 위해 곗돈을 증식한다’며 ‘기금을 길러 가문의 명예를 손상하는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한다’고 했다.

모두 13조로 이뤄진 절목은 계의 범위, 기금의 액수와 운용 방법, 환호(還戶·환곡을 타 먹는 집)의 수, 조직, 계일(契日) 상환 기한, 계금의 대출, 계원의 화목, 자손의 가입, 계원의 명부 추가 조항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또한 관직에 나가는 사람이 기금을 더 내도록 한 규칙이 실려 있다.

문서에는 역대 안동부사의 격려문이 함께 수록됐는데, 부사 윤치수는 “의장절목 덕분에 법을 두려워하고 관리를 존중하게 됐는데, 그것이 국가를 존중하고 한 가문의 치욕을 멀리하는 일”이라는 찬사를 적었다.

고문서 전문가인 하영휘 전 성균관대 교수는 “가문 차원에서 조세를 위해 기금을 만든 자료는 매우 유례가 드문 것”이라며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으로 세금이 과중했던 조선 후기에 씨족과 지역사회를 지키고 종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계를 만들었다는 노력을 알려 주는 귀한 자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