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와 경북 구미시의 취수원 갈등 때문에 어렵게 마련한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 보존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반구대 암각화 하류에 있는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 침수를 막는 대신 울산의 부족해진 식수를 대구의 취수원인 경북 청도 운문댐에서 끌어오는 ‘낙동강 통합물관리방안’이 대구, 구미간 갈등으로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1971년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는 높이 2.5m, 너비 8m 바위 면에 새끼를 업은 귀신고래, 호랑이 등 약 300점의 그림이 새겨진 유적이다. 단체로 배를 타고 고래를 잡거나 벌거벗고 피리 부는 사람 등 신석기 시대 생활상을 보여준다. 지난 2월엔 문화재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 등재 목록에도 선정됐다.
반구대 암각화는 발견 6년 전 지어진 울주군 대곡천 내 사연댐의 저수 구역 안에 있어 수시로 침수 피해를 입고 있다. 암각화는 사연댐 수위가 53m를 넘으면 잠기기 시작한다. 2013년까지 해마다 150일 넘게 침수됐다. 2014년부터는 사연댐 물을 방류해 평소 수위를 52m 이하로 유지했지만 비가 많이 올 때면 잠겨 연평균 42일 침수됐다.
최근 태풍에도 반구대 암각화는 물에 잠겼다. 21일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태풍 ‘난마돌’이 울산을 강타한 지난 19일 사연댐 수위가 54.5m까지 올라 암각화가 부분 침수됐다. 지난 6일 ‘힌남노’ 때도 수위가 55.6m까지 오르면서 물에 잠겼다.
울산시와 정부는 2000년대 초부터 반구대 침수 피해를 막을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십수 년간 논의 끝에 울산시와 환경부, 문화재청,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해 4월 사연댐에 수문(水門)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장마철 수문을 개방해 댐 수위를 낮추면 연평균 침수일이 1일 이내로 대폭 줄어들 것으로 기대됐다. 대신 사연댐 수위를 낮춰 부족해진 울산의 식수는 대구, 구미 등과 협의해 대구의 식수원인 청도 운문댐 물을 울산으로 가져오기로 했다. 대구가 구미의 해평취수장에서 하루 30만t의 물을 받는 대신, 운문댐 물 일부를 울산에 주기로 한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낙동강 통합물관리 방안’은 지난해 6월 국가물관리위원회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가 의결하고, 올해 4월 국무조정실과 환경부, 경북도, 대구시, 구미시, 한국수자원공사 간에 ‘맑은 물 상생 협정’을 맺으면서 실현되는 듯했다.
그러나 민선 8기 출범 후 구미, 대구가 해평취수장 공동 이용 문제를 두고 갈등을 보이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취임 후 “해평취수장 공유 협정은 주민 동의가 부족한 졸속 합의였다”며 재검토를 주장했고, 홍준표 대구시장도 “더 이상 구미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대구시는 지난달 17일 ‘맑은 물 상생 협정’을 맺은 지자체와 관계기관에 협정 해지를 통보했다.
운문댐 물을 가져오는 것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울산시는 사연댐 수문 설치 작업도 사실상 중단했다. 울산시는 지난해 5월 사연댐 수문 설치 효과를 분석하는 연구 용역을 시행해 지난 2월 마무리했다. 하지만 울산시 관계자는 “수문 설치는 식수 확보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물 확보가 되지 않는 이상 진행할 수가 없다”며 “내년 예산안에 수문 설치와 관련한 예산이 잡힌 것도 현재로선 없다”고 말했다. 지난 6월엔 운문댐 물을 울산으로 가져오는 관로 설치 사업이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지만, 이 역시 실행될 지 미지수다.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반구대 암각화는 수십 년간 침수, 노출을 반복하면서 암면의 암석이 빠른 속도로 약화되고 있다”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세계유산 등재는커녕 유네스코가 멸실 위험이 있는 유적을 관리하는 위험 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전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가 합심해 하루빨리 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내야 한다”고 했다. 울산시 관계자도 “정부가 적극 중재에 나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울산=김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