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택배 박스 버리실 때 테이프는 다 떼고 내놔야 재활용이 되거든요”

2020년 12월 8일 오후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 단지 내 분리수거장. 환경부가 도입한 자원순환 도우미(재활용품 분리배출시 도와주는 역할)들이 분리수거하는 주민들을 돕고 있다. /김지호 기자

8일 오전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재활용품 분리수거장. 연두색 조끼를 입은 ‘자원 관리 도우미’가 한마디 하자,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으러 나왔던 주민이 멋쩍게 웃으며 테이프를 떼기 시작했다. 주민이 들고 나온 상자 안에는 라벨이 붙어있는 플라스틱 생수통, 재활용이 안 되는 과일 포장재 등이 가득했다. 지난 9월부터 이 아파트에서 자원 관리 도우미로 근무하고 있는 강봉애(여·65)씨는 “그래도 3개월 전보다는 제대로 분리배출하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여전히 많은 양은 우리가 라벨을 제거하거나 음식 찌꺼기를 씻어내는 등 뒷정리를 해야 한다”며 “(자원 관리 도우미 배치) 사업이 끝나면 다시 원상 복귀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정부가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전국 1만5000여 아파트에 재활용 쓰레기 분리배출을 돕는 ‘자원 관리 도우미’를 배치한 사업이 오는 14일 끝난다. 오는 25일부터는 전국에서 투명 폐페트병 별도 수거가 의무 사항이 되는 가운데 시민들의 인식 변화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8600여명 ‘자원 관리 도우미’ 활동

환경부는 올여름 3차 추가경정예산에 인건비 422억원을 편성해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자원 관리 도우미를 배치했다. 당초 1만명 고용이 목표였으나 코로나 확산 등으로 지원자가 그에 못 미쳐 최종적으로는 8600여 명가량이 고용됐다. 이들은 9월 1일부터 순차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환경부는 이번 사업으로 주민들의 재활용 쓰레기 배출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깨끗한 재활용 폐기물 배출량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성과가 얼마나 갈지는 미지수다.

자원 관리 도우미 배치 사업은 오는 14일 마무리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주민들이 쓰레기를 내놓을 때 전문가가 도움을 주면 효과가 있는데, 처음부터 단발성 일자리로 계획된 것이 문제”라며 “지속적인 홍보와 민간 영역에서의 폐기물 관리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성과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투명 폐페트병 별도 배출, 전국 확대

페트병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지난 2월부터 서울⋅부산⋅김해⋅천안⋅제주⋅서귀포 등 6곳에서 시범 사업이 진행된 ‘투명 폐(廢)페트병 분리배출제’는 오는 25일부터 전국으로 확대된다. 페트병 라벨이나 뚜껑이 그대로 붙어 있거나, 병 자체에 색깔이 있으면 재활용이 어려워 이를 별도로 배출하는 것이다. 천안시와 제주시에선 시범 사업 이후 전체 폐페트병 수거 물량 중 투명 페트병만 100% 모아서 내는 아파트가 대부분이 될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

문제는 시범 사업지 중에서도 이 정책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곳이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서울의 경우 지난 7월 기준 투명 페트병을 별도로 수거하는 아파트가 50%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 코로나 여파로 제도 홍보를 맡아야 하는 구청·동사무소들의 업무에 과부하가 걸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선 성과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내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제도를 확대 시행해 일상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폐기물 업체 “폐플라스틱 질 높여야”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플라스틱 쓰레기가 늘어난 데다 저유가로 석유에서 갓 뽑아낸 새 플라스틱 가격은 낮아지면서 대체재인 폐플라스틱 가격은 더욱 떨어졌다. 이 때문에 폐플라스틱 적체 현상이 심각했다. 폐플라스틱의 질과 단가가 높아져야 폐기물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수거에 나서고 재활용도 순조롭게 이뤄진다.

지난 2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폐플라스틱 원료의 판매 단가가 지난 9월 이후로 상승세를 보이긴 하고 있다. 11월 기준 폐페트(PET)의 ㎏당 가격은 581원으로 지난 9월 567원보다 다소 올랐다. 하지만 한 업체 관계자는 “작년에는 ㎏당 800원대였던 것이 500원대에서 조금 올랐다고 효과가 크겠냐”며 “국내 발생 폐플라스틱의 질이 올라 수요처가 많아지도록 분리 배출이 잘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