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지난해 영화 ‘테넷(TENET)’에는 공항 안에 있는 한 창고가 주요 장소로 등장한다. 고가의 미술품을 보관하는 수장고(收藏庫)다. 이 같은 수장고가 영화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 제네바 국제공항, 룩셈부르크 핀델 국제공항,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는 영화처럼 돈을 받고 고가의 미술품을 보관하는 곳이 실제로 있다. 수년 안에 인천국제공항에도 들어설 전망이다.

김경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14일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공항에 미술품 수장고를 만드는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김경욱(55)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14일 본지 인터뷰에서 “민간 업체로부터 인천공항에 수장고를 만들자는 투자 제안이 들어와 있는 상태”라며 “이미 국토교통부에 추진 계획을 보고했고 문화체육관광부와도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2026년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가면 인천공항이 문화예술 산업의 허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술품 수장고는 온도와 습도 등을 일정하게 유지해 미술품 손상을 막고, 보안을 유지하는 시설이다. 국내에는 미술관에 딸린 수장고나 소규모 수장고는 있지만 본격적인 사설 수장고는 없다. 김 사장은 “수백억원이 넘는 고가 미술품이 거래되려면 수장고가 꼭 필요하다”며 “2025년쯤 공항에 자가용 비행기 이용자를 위한 시설이 들어설 텐데, 수장고와 연계해 해외의 고액 자산가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했다.

국토교통부 차관 출신인 김 사장은 올해 2월 취임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019년까지 누적 흑자 7조8845억원을 냈지만, 지난해 코로나 사태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사장은 “긴축경영을 했지만 올해도 76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며 “내년 말은 돼야 월 기준으로 적자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김 사장은 “코로나 사태로 면세점 같은 상업 시설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공사의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앞으로 해외 공항 운영·건설 등으로 수익구조를 다변화해야 하는데, 미술품 수장고 건설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했다.

김 사장은 “1터미널 남쪽에 있는 장기주차장을 모두 지하로 내리고, 그 위에 랜드마크 시설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아직 구체적인 구상은 나오지 않았다”면서도 “한류 체험 공간이나 박물관·놀이시설 등을 세우는 것을 고민 중으로 구체적인 계획 마련을 위해 지난달 컨설팅 용역을 발주했다”고 했다. 1터미널 장기주차장은 부지 넓이만 38만㎡(약 11만5000평)다. 공사가 끝나면 공항 모습이 완전히 뒤바뀌게 될 전망이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 안에 조성된 실내 놀이공원이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듯, 인천국제공항에도 관광 명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공사는 최근 신입직원 68명을 뽑았다. 적자 상태지만 코로나 이전과 뽑는 규모가 크게 차이가 없었다. 김 사장은 “미래 세대인 청년들에게 최대한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