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현 고2가 입시를 치르는 2026학년도의 의대 정원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다음 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열어 통과시킬 계획이다. 이 법안은 법정 의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와의 사전 교감하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국회 본회의 통과 시, 지난 10개월간 지속된 의정 갈등을 푸는 ‘출구’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9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오는 23일 오후 1시 30분 전체 회의를 열고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보건 의료 인력 지원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27일 본회의에 상정돼 통과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 법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먼저 ‘전 학년도 증원 규모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 등을 이유로 증원 규모의 조정이 필요한 때 이를 감원할 수 있다’는 특례 조항을 추가한 것이다. 2025학년도에 의대 정원이 1497명 늘어났다면, 2026학년도엔 줄일 수도 있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셈이다.
두 번째 특징은 보건복지부 2차관이 위원장인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 안에 ‘보건 의료 인력 수급 추계 위원회’를 두되, 위원 과반을 보건 의료 단체가 추천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의료계 입김대로 향후 의대 정원이 결정되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는 뜻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법안이 사실상 당론”이라며 “다만 증원 규모를 얼마나 줄일지 당이 특정할 수는 없으니 위원회를 둬서 논의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현재 당 전부가 비대위원장 인선 논의에 매달리고 있어 이 법안 등 현안 대응이 어렵다”고 했다.
현재 의료계에선 “2025학년도에 늘어난 의대 정원 1497명을 손댈 수 없다면 2026학년도에 그만큼을 줄여 의대 교육 부실화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돼 있다. 2025학년도에 급증한 정원으로 정상적인 의대 교육이 힘들기 때문에 2026학년도엔 기존 정원(3113명)에서 오히려 1497명 이상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의료계에선 이 법안이 지금의 꽉 막힌 의정 갈등을 해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세브란스병원의 한 교수는 “법에 정원 감축 조항과 의료계가 향후 정원 수준을 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기게 되면, 현 정부의 방침과 상관없이 이번 의정 갈등을 부른 대규모 증원을 차후에라도 바로잡을 수 있게 된다”며 “병원과 학교를 떠난 전공의들과 의대생을 설득해볼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또 민주당의 이번 ‘의대 정원 감축 법안’은 모든 의사가 가입돼 있는 의협의 의견이 대폭 반영된 것이어서, 의료계의 협조를 이끌어내기도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다음 달 선출될 새 의협 회장이 전공의 복귀를 적극 설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본지에 “민주당의 (의대 정원 감축) 법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정원 감축이 가능하다는 것을 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로 곤혹을 느끼는 대학 총장들도 이번 법안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다. 의대선진화를위한총장협의회(의총협) 공동 회장인 양오봉 전북대 총장은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이 줄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 의대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다면 대학도 적극 참여하고 따를 것”이라며 “그러나 각 대학이 의대 증원에 대비해 이미 막대한 투자를 한 만큼 기존 정원 이하로 줄이자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교육계 인사들은 “법이 통과되면 ‘보건 의료 인력 수급 추계위’를 조속히 꾸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각 대학이 줄어든 의대 정원을 교육부에 제출해 심의를 받고, 관련 학칙도 개정해 내년 5월 31일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변경된 대입 시행 계획을 발표하려면 내년 2월까지는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확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료계가 주도하는 수급 추계위 형태가 빨리 갖춰질수록 내년 상반기 추가 모집 등을 통해 전공의 복귀를 유도하기도 용이해진다”고 했다. 이 교수는 “수급 추계위에서 의사 수요 조사 등을 서두르면, 빠듯하지만 내년 2~3월에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확정할 수 있다”고 했다.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이진우 대한의학회장은 본지 통화에서 “의대 정원을 감축할 수 있다는 다소 모호한 규정으로 의료계의 호응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수도권의 한 사직 전공의는 “민주당 법안은 현재 전공의들이 바로 효과를 체감하긴 어려운 법안이어서 전공의 복귀에 당장 영향을 주진 못할 것”이라며 “지금 전공의들 관심은 내년에 복귀해도 예전처럼 수련을 마칠 때까지 입대를 연기해주는 병역 특례를 정부가 제공할 것인지 등에 쏠려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