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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바오로 조각

전남 신안군 하의도 천사상을 만든 최바오로(71)씨는 파리7대학 명예교수로 알려졌지만 목공소 출신 사기 전과자였다는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최씨는 최근 본지 통화에서 이번 논란으로 자신과 가족에게 가해지는 형벌이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연탄가스로 자살을 기도했다거나, 119 덕분에 살아났다거나, 몸이 아파서 누워 있다며 수십 분 동안 장광설을 펼쳤다.

‘파리 에콜 데 보자르, 파리 4대학 졸업’ ‘베를린대학 예술학부 교수’ ‘피렌체 미술관 전속 작가’ ‘파리 제7대학 예술학부 명예교수’…. 2019년 신안군이 천사상 미술관을 개관하며 소개한 최씨 이력이다. “6·25전쟁 때 고아가 되고 이탈리아 유명 화가의 양아들로 입양됐다” “프랑스·독일·로마 목공방에서 ‘리틀 로댕’으로 불렸다”는 설명도 있었다.

이런 경력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물었다. 청송교도소 출소 후 1990년대 한 예술 잡지와 ‘21세기를 이끌어가는 예술인’을 주제로 인터뷰했는데, 해당 잡지에서 자신을 ‘파리7대학 명예교수’로 설명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었다. “젊은 시절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을 조각한 서울대 김세중 교수 조수로 일했다” “대학로 극장에서 무대 미술도 했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청송교도소로 옮겨 갔다” 등 현란한 일대기를 읊었지만 믿기 어려웠다.

“파리고 베를린이고 가 본 적도 없다”는 최씨는 “인터넷에서 내 허위 경력은 부풀려졌지만 내가 인터넷을 못하니 고치지 않았다”고 했다. “차라리 마음먹고 사기를 쳤으면 서울대 조소과를 나왔다고 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김대건 신부 묘 앞에 설치된 피에타 조각을 “한국 사람 모습으로, 죽어도 남겠다 싶게 아름답게 만들었다”며 “그것도 사기꾼 작품이냐”고 했다. “짜장면 맛있게 하는 주방장이 과거 전과가 있었으면 짜장면이 갑자기 맛이 없어지냐”는 대목에선 정치인의 연설을 듣는 기분마저 들었다.

최씨의 제작품은 고속도로 휴게소나 여느 관광지에서 파는 기념품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제작품도 ‘파리7대학 명예교수’라는 후광(後光)을 입으면 세계적인 조각가의 깊은 신앙심이 우러나는 걸작이 된다. 사랑과 평화, 용서와 화해를 표현했다는 최씨가 전국 각지에서 전시회를 열고 가톨릭 성당·성지에 ‘예술’을 납품하는 동안 미술계·종교계는 그의 정체를 까맣게 몰랐다.

미술계에선 최씨에 대해 “정식 조각가도 아니고 듣도 보도 못 한 인물”이라고 했다. 이 때문인지 2000년대 미술계 중심에서 대담하게 ‘예일대 박사’를 사칭했던 신정아 사건에 비하면 빠르게 잊히는 분위기다. 하지만 프랑스·독일·이탈리아 3국을 망라하는 이력을 제대로 검증조차 하지 않았다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변명을 들으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의 문화 사대주의, 변방 열등감은 여전한 것 아닌가 씁쓸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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