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릴리’의 ‘칼라’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줄기로부터 힘차게 뻗어 올라 우아한 곡선을 이루며 펼쳐지다 날카롭게 끝을 맺는 순백의 꽃잎은 과연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하지만 아무리 만인의 눈을 매혹하는 꽃이라도 그것이 고된 생계의 수단인 이에게는 귀중하지만 버거운 짐이다.
멕시코의 국민 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는 화려하게 만개한 칼라릴리 꽃 더미 아래 파묻히듯 무릎을 꿇고 앉은 원주민 소녀를 그렸다. 얼굴을 알 수 없는 소녀의 몸집이 꽃에 비해 너무 작다. 리베라에게 칼라릴리는 멕시코의 고통과 동시에 희망의 상징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리베라는 1909년부터 10년 동안 유럽에서 수학하면서 피카소와 뒤샹 등 혁신적인 미술가들과 가깝게 지내며 다양한 회화의 양식을 익혔다. 사실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된 리베라는 고국으로 돌아와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적인 미감을 결합해 독자적인 스타일을 이룩했다.
그의 색채에서는 투박하지만 강인한 땅의 기운이 느껴지고, 단순하고 명료한 형태로 그려낸 멕시코인들은 순수하면서도 고귀했다. 부활의 상징으로 특히 장례식에 많이 쓰이는 칼라릴리는 유럽의 무자비한 수탈로 시작된 멕시코의 고난의 역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삶을 일구는 평범한 이들에게 리베라가 바치는 꽃이다.
이 그림은 1941년 여름, 멕시코시티를 방문했던 미국 영화배우 캐리 그랜트가 리베라를 만난 뒤 구입해 수십 년간 보유하다 미술관에 기증했다. 사회 밑바닥에서 시작해 스스로 최고의 지위에 오른 그랜트에게도 한 아름이 넘치도록 칼라릴리를 끌어안은 작은 소녀가 남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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