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터널 위 커다란 은행나무 옆에는 ‘딜쿠샤(Dilkusha)’라 불리는 붉은 벽돌집이 있다.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와 그의 아내 메리(1889~1982)가 일제강점기에 살던 집이다. 3·1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일었던 이즈음 ‘기쁜 마음’이란 뜻의 딜쿠샤가 더욱 깊이 다가온다.
앨버트는 광산 기술자인 아버지를 따라 우리나라로 와 광산과 테일러상회 등을 경영한 사업가이자 언론인이다. 일본에서 만난 메리에게 호박 목걸이를 선물하며 인연을 맺고 1917년 인도에서 결혼했다. 인도 여행을 하며 본 아름다운 궁전을 마음에 품고 훗날 딜쿠샤를 지었다고 한다.
메리는 일기와 사진과 그림을 구슬 꿰듯 엮어 사랑의 징표인 ‘호박 목걸이’를 제목으로 회고록을 남겨 놓았다. 메리 생전에 출판하지 못했지만, 아들 브루스가 어머니의 유고를 출간해 딜쿠샤가 품은 사연과 당시 모습을 정성껏 담아내었다.
브루스는 1919년 2월 28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즈음 앨버트는 AP 통신원으로 임명된다. 간호사가 수색을 피해 병실 침대에 몰래 숨겨 놓은 독립선언서를 발견해 기사를 작성했다. 동생 윌리엄이 이 기사를 구두 뒤축에 숨겨 전하면서 3·1 독립선언이 전 세계로 전파됐다. 그 이후에도 제암리 학살사건 등을 취재하며 독립운동가를 도왔다.
테일러 부부는 산책하다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은행나무에 반해 집을 짓기로 결심한다. 1923년에 첫 삽을 떠 1924년 봄에 완공했다. 테일러 부부는 20여 년을 딜쿠샤에서 살다가 1942년 외국인 추방령으로 강제 추방되어 미국으로 갔다.
딜쿠샤는 ‘귀신 나오는 집’이라고도 불리며 모습을 점차 잃어갔다. 2006년 브루스가 어린 시절 살던 집을 찾으며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유족이 기증한 유물과 사진을 참조하며 복원이 진행되었고 브루스도 ‘은행나무 옆의 딜쿠샤’를 출판했다. 딜쿠샤는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으로 국가유산이 되었고, 은행나무는 ‘권율장군 집터’ 표지석을 앞세운 보호수가 되었다.
우리나라를 사랑한 테일러 부부의 기쁜 마음으로 알알이 꿰어진 딜쿠샤는 진정 메리가 바라는 ‘희망의 궁전’이 되었다. 그 그윽한 눈길을 닮고파 딜쿠샤 창가에서 봄 햇살 받은 은행나무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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