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건축가 중 건축 전공자들에게 가장 추앙받는 건축가는 아마도 스위스 출신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1887~1965)일 것이다. 그는 ‘유니테 다비타시옹’ 같은 최초의 현대식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반면 일반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건축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디자인한 안토니 가우디(1852~1926)일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가우디가 얼마나 최근 건축가인지 잘 모른다. 그의 디자인이 워낙 고전적인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나이는 불과 35년의 시차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 스타일은 극과 극으로 다르다. 가우디는 서양 전통건축의 맨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고, 르코르뷔지에는 현대식 건축의 첫 시작이기 때문이다.
두 건축 스타일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 재료가 다르다. 가우디는 주로 돌을 사용했다. 최근에 지어지고 있는 부분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최신 콘크리트 기법이 적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디자인 자체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사용하던 기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르코르뷔지에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한다. 재료가 다르다 보니 구조가 다르고, 구조가 다르니 형태와 공간도 다르다.
또 다른 차이점은 ‘장식의 있고 없음’이다. 서양 전통 건축은 장식을 많이 했다. 특히 성당 같은 경우에는 조각, 그림,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미디어가 건축과 혼합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가우디는 이런 전통을 이어서 자신의 디자인에 장식을 극대로 넣었다.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 양식을 따라서 아름다운 곡선이 많이 들어간 디자인을 추구했다. 그런데 가우디 작품은 기존의 전통 건축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부분이 있다. 바로 ‘글자와 컬러’다. 전통적으로 성당에 그림과 조각이 많았던 이유는 당시 사람 대부분이 문맹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알려주기 위해서 조각, 그림, 스테인드글라스로 시청각 자료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가우디가 활동했던 19세기 말에는 금속활자가 발명된 후에 문맹률이 많이 떨어진 시대였다. 그러다 보니 건물 외관에 글자가 들어가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컬러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과거 서양 전통 건축에는 그림과 스테인드글라스 정도에만 컬러가 들어가 있고 건축물 자체에는 제한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가우디의 작품은 색채가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뿐 아니라 ‘구엘 공원’이나 ‘카사 바트요’ 같은 작품들은 다양한 색상의 타일로 마감된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가우디가 태어나고 활동한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방으로 타일 산업이 발달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천연 석재와는 다르게 타일은 화려한 색깔이 있는 재료다. 가우디는 지역적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그의 건축에 화려한 색상의 타일을 사용했다. 그의 건축 디자인은 유기적이고 자유로운 3차원 곡면이 많은데, 복잡한 표면에 타일을 붙이기 위해서 타일을 깨뜨려서 사용한 것 또한 독특한 특징이다. 파쇄된 타일이 디자인의 복잡성을 더 증가시킨다. 한마디로 가우디의 작품은 글자와 컬러까지 사용한 ‘장식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화려함 덕분에 일반인들에게 예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불과 35년 후에 태어난 르코르뷔지에는 왜 다른 건축을 했을까? 두 사람 사이의 35년 동안 커다란 재난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시대에 증기선, 자동차, 엘리베이터, 비행기와 같은 기계 문명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는 점도 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기계 문명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르코르뷔지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건축은 ‘기계’와 같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집이 ‘사람이 살기 위한 기계’라고 정의 내렸다. 기계가 되려면 대량 생산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기존의 건축은 돌과 벽돌을 쌓아서 만드는 수공업이었다. 기계는 공장에서 제작된다. 건축이 기계처럼 되고 대량 생산되기 위해서 건축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재료를 사용해야 했다. 그렇게 선택된 재료가 철근과 콘크리트다.
르코르뷔지에가 주로 활동해야 했던 시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다.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양상은 융단폭격으로 상대방 도시를 괴멸시키는 것이 전략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이 살 집이 없었다. 많은 사람을 위한 주택을 빠르게 공급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주택 대량 생산을 위해서 표준화를 해야 했고 공장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사용해야 했다. 저렴하게 지어야 하다 보니 장식을 모두 없애야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장식 없이 노출 콘크리트 마감으로 만들어진 아파트 ‘유니테 다비타시옹’이다. 대량 생산을 위해서 표준화 작업을 하다 보니 몇 개의 평면이 반복되어서 사용될 수 있게 모듈러 시스템을 적용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20세기 후반 건축의 표준이 되었다.
가우디와 르코르뷔지에 두 사람은 각각 자신이 살았던 시기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건축가다. 두 사람은 35년이라는 한 세대밖에 되지 않는 나이 차이를 가졌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격동의 시기를 거쳤기에 전혀 다른 건축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기후변화와 인공지능의 발달 등으로 그때 못지않은 격동의 시기를 살고 있다.
과연 우리가 사는 지금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건축과 도시 디자인은 무엇일까? 기후변화에 살아남을 수 있는 친환경 건축과 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된 새로운 도시, 3D 프린터로 만들어지는 건축 등일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북반구에 인류 거주 지역이 좀 더 북방으로 이동하여 북극해 해안가 중심으로 새롭게 도시들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실현해서 세계인이 모두 우리를 따라 하는 선구자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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