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독자들 눈에도 익숙하겠지만 잘 들여다보면 어딘가 낯선 구석이 있다. 틀림없이 같은 배경, 같은 인물들인데 얼굴과 의복의 세부가 흐릿하고 색채 또한 조금 어둡다. 사실 르누아르는 같은 해에 똑같은 작품을 두 점 그렸는데, 널리 알려진 건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품이고, 지금 이 작품은 작은 버전이다. 르누아르가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그렸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1877년 전시에서 ‘물랭 드 라 갈레트’가 호평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과연 둘 중 어느 것이 전시장에 걸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그림은 1990년 5월, 일본 기업가 사이토 료에이가 소더비 경매를 통해 7800만달러(당시 환율로 557억원)에 구매했는데, 그는 동시에 크리스티 경매에서도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8250만달러에 구입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두 가격은 꽤 오랫동안 최고의 회화 경매가라는 기록을 유지했다.
사이토는 인상주의 최고의 걸작 둘을 품에 안은 지 고작 6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문제는 구매 직후 거액의 세금을 내야 했던 사이토가 자손에게 물려줄 때 상속세를 또 내느니 차라리 두 작품과 함께 자신을 화장하겠다고 공언했던 것. 실제로 그의 사망 뒤로 이 둘의 행방이 한동안 묘연했다. 전 세계 미술인들은 진정 두 작품이 재가 되어 사라졌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물랭 드 라 갈레트’는 스위스, ‘가셰 박사’는 호주의 개인 소장가가 갖고 있다고 한다.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좋으니, 일단 무사히만 있으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