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색에 중독된 멕시코
색은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다. 상징적인 역할을 해서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고, 희망과 절망,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색은 시각적으로 가장 먼저 다가오는 공간 구성의 핵심 요소이자 문화적 인식의 중요한 부분을 설명한다.
색으로 대표되는 지역들이 여럿 존재한다. ‘사막의 붉은 도시’로 불리는 요르단의 페트라, 동화 같은 ‘파란 마을’인 모로코의 셰프샤우엔, 언덕 위 하얀 경관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산토리니섬 등이다.
이런 특정 색으로 유명한 도시들 외에도 코펜하겐의 니하운 항구, 이탈리아의 부라노섬,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보캅이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보카처럼 어떤 목적이나 이유로 건물이 총천연색으로 칠해진 지역도 있다.
멕시코·니카라과·콜롬비아·에콰도르 등 중남미 여러 나라에는 노란 자동차, 연두색 담장, 빨간 길바닥과 온갖 색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마을 전체가 총천연색 캔버스를 연출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중에서도 멕시코는 그야말로 색에 중독되어 있다.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행주도 멕시코에서는 흰색이 아니다. 길거리 노점 식당부터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까지 분홍색이나 연두색 행주를 쓰는 일이 태반이다. 이렇게 색을 좋아하는 전통은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같이한다. 선사 시대부터 마야, 아즈텍 문명까지 건축용 목재가 흔하지 않아 석재를 주로 사용했고, 마감된 신전의 회벽 위에 색을 칠하곤 했다. 자연 염료로 직물을 물들일 때 나타나는 색채를 도자기 등 다양한 민속 예술에 적용해왔다.
전통이 바탕이 되었지만, 건물을 칠하는 건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에서다.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멕시코에서 수도나 휴양지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비싸고 호화로운 건축을 짓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럴 때 유일하게 쉽게, 그리고 싸게 디자인할 수 있는 방법이 색을 도입하는 것이다. 시멘트 벽에 단순히 칠만 해도 더러움을 가리고 건물을 새롭게 꾸밀 수 있다. 때때로 창틀을 흰색으로 칠해 대비를 주고, 곳곳에 장식 요소를 더하기도 한다. 페인트칠된 벽 중간에 색채 타일을 조금씩 추가하는 정도는 약간의 여유나 사치의 표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추수가 끝난 농한기나 축제를 앞두고 집을 다시 칠한다. ‘멕시코에서는 색이 주소’라는 표현처럼 라벤더·노랑·연두색 등 집주인이 좋아하는 색으로 집을 칠한다.
얼핏 보면 혼란스럽고 화려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다. 하루의 시간대나 날씨에 따라 색이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같은 길거리라도 햇빛이 드는 쪽은 따뜻하고, 햇빛이 닿지 않는 쪽은 차분한 느낌을 주며 대비를 이룬다. 때로는 몽환적인 느낌마저 든다. 예상치 못한 색의 마법이다.
지역이나 문화마다 색은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가진다. 멕시코의 경우, 노랑은 태양, 파랑은 바다, 빨강은 피와 희생, 그들의 영웅을 상징하며, 녹색은 독립과 희망을 나타낸다. 주택이나 직물, 공예품, 심지어 택시에서 자주 보이는 핑크색은 로맨스와 부드러움, 섬세함과 여성스러움을 표현한다. 색마다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대부분의 멕시코 사람들은 특별히 그 의미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진심으로 화려한 색을 좋아하고, 색이 자신들에게 행복을 준다고 믿을 뿐이다. 다만 검정과 회색은 사용하지 않는다. 멕시코의 ‘망자의 날(Día de Muertos)’을 소재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코코(Coco)’에서 볼 수 있듯, 이 색들은 암흑과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색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비싼 재료나 복잡한 디자인, 더구나 명품도 아니어서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럼에도 색의 힘은 크다. 명료하고 간결한 이미지로 가장 먼저,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강하게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멕시코인에게 색을 칠하는 것은 생명을 부여하는 것과 같으며,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의식이다. 문화적으로 이는 기쁨을 상징한다. 집의 외벽을 칠하는 것은 ‘기쁨을 이웃과 나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채색된 도시의 서사에 정감을 느낀다. 주민들뿐만 아니라 거리를 걷는 행인과 방문객까지 풍요로운 느낌을 받는다. 마치 헬로키티 인형을 보거나 손으로 ‘V’ 자를 만드는 동네 어린이의 웃음을 보는 것과 같은 좋은 기분이다. 이런 기쁨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과 무언가를 제시하는 것은 다르다. 색채는 후자다. 마음을 열고 이 공간에 동의할 때, 우리는 그 색의 세계로 초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