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미래에 지구상에서 인류가 사라진 뒤 기계만 남는다면 이런 풍경이 될 것이다. 문명의 흔적을 찾기 힘든 황량한 대지에 화석처럼 메마른 백골이 드러나 있고, 그 주위에 로봇 팔들이 둘러서 있다. 카메라와 센서,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 팔은 마치 고대의 제사장이 장례를 치르듯 유리구슬과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금속 물체들을 이리저리 옮겼다가 먼 곳을 가리키는 등 쉬지 않고 움직인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져 온 프랑스 미술가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1962~)의 영상 설치 작품 ‘카마타’의 한 장면이다.
다른 행성 같은 이곳은 지구에서 가장 메마른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 제목인 ‘카마타’는 그 가운데 위치한 세계 최대의 노천 구리 광산 ‘추키카마타’에서 따왔다. 실제로 거기서 발견된 영상 속 백골은 20세기 초 사망한 광부의 것이다. 처음 이 백골을 마주한 위그는 나약한 인간의 육신과 소멸할 운명을 타고난 모든 생명의 유한함, 그리고 인류 멸종이라는 암울한 미래를 떠올렸다. 하지만 인간보다 강인하고, 훨씬 더 합리적으로 사고하며, 냉철하게 판단하는 인공지능은 에너지만 공급된다면 영원히 작동할 것이다. 어쩌면 ‘카마타’에서 오래전 사망한 인간을 위해 정성껏 제사를 지내는 로봇이 인간의 진화형은 아닐까.
현재 ‘카마타’는 서울 리움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위그의 개인전에서 상영되고 있다. 시작도 끝도 없이 반복되는 영상은 전시장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수집된 환경 데이터에 따라 실시간으로 AI가 편집한다. 위그의 전시는 사람과 환경이 모두 AI를 위한 ‘데이터’로 치환되는 세상을 구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