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은 제2연평해전 10주기다. 10년 전 이날 북한 경비정 684호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고, 이를 막으려는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를 기습 공격했다. 이로 인해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했다. 10년을 맞은 올해 당시 우리 군(軍) 수뇌부가 '발포'라는 단어가 포함된 북한의 도발 정보를 수차례 입수하고도 이를 묵살했고, 북한의 계획된 NLL 도발을 '단순침범'으로 판단해 일선부대에 하달했다는 내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당시 군 수뇌부의 이런 판단과 행동은 일차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무조건적 평화·화해 기조 때문일 것이다. '이 사건은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고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북한의 통지문 내용을 그대로 믿고 "(제2연평해전은) 우리 해군의 잘못도 있었다"고 말하는 당시 안보 당국자들의 명령을 이행하는 데 군 수뇌부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한 예비역 해군 제독은 "1999년 6월 제1연평해전을 앞두고 '먼저 발포하지 말라'는 교전 규칙이 내려왔을 때 '도대체 어떻게 싸우란 말이냐'는 부하들의 반발이 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고민은 고민으로 끝났다. 당시 정부의 교전 규칙이 공개된 이후 북한 경비정은 하늘로 향했던 포를 우리 해군 함정을 향해 겨누기 시작했지만 "현실성 없는 교전 규칙을 바꿔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나선 군(軍) 장성은 없었다고 한다. 1999년 제1연평해전 이후 일선 해군 부대에선 "막대한 피해를 당한 북한이 틀림없이 보복할 것이기 때문에 함정이 근접해 밀어내는 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당시 군 수뇌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별을 달아 줄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안보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연평해전에 책임이 있는 군 장성들은 다음 정권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군 고위 관계자는 "현재 지휘관들이 적의 동태보다 정권과 군 수뇌부의 동태를 더 살피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군이 '전투형 강군 육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자, 일선 지휘관들이 상부에 보고할 전투형 강군 육성 '발표 자료'부터 고민하더라"는 말도 있다. 우리 군에서 별을 단 장성(將星)은 444명이다. 이 중 진정한 장수(將帥)는 몇이나 되는지 군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