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광고 하나가 눈길을 잡아끈다. 비주얼은 8월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지구의 한 귀퉁이, 광고 카피는 '지구의 타들어가는 슬픔은 곧 우리의 슬픔이기에'다. 수분 함량 0.00001%의 말라비틀어진 흙덩이를 보고 있자니 타들어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실감 난다. 서브 카피는 더 절절하다. '기후 변화로 인한 사막화 때문에, 이상 기후로 인한 대홍수 때문에 지구가 울고, 지구가 슬퍼하며, 지구가 아파하고 있습니다'. 아파서 구슬피 운단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저 흙과 풀과 물로 이루어졌을 뿐인 이 무감정한 세계에 이렇게 따듯한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다니. 그 고통과 비명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안타까워할 수 있다니. 인간의 만행에 맞서 지구가 버티는 힘을 '지구력'이라고 하는데 이 광고를 보면 이제 그 지구력도 슬슬 끝이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대체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거지?
문제가 하도 다양하여 총체적으로 난감한 종(種)이지만 특히 심각한 것을 꼽으라면 앤드로포센트리즘(인간 중심주의)이다. 쉽게 말해 항상 인간이 기준이다.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 절대 안 한다. 인간은 갑(甲)이고 나머지는 모조리 을(乙)이다. 눈보라 덜 치는 날 설산 꼭대기에 발자국 한번 디뎠다고 그걸 '정복'이라고 태연히 자랑한다. 광고는 인간이 숲을 파괴하고 공기와 바다를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동식물을 멸종시키고 지구의 숨통을 조르고 있다고 걱정이다. 그럼 나중에는 어떻게 될까. 매우 간단하다. 인간이 살기 고달파질 뿐이다. 그냥, 그게 다다. 미안하지만 자연은, 지구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개그콘서트 '네 가지' 코너에서 촌놈으로 등장해 핏대 올리는 양상국의 하이 톤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안 울거든! 안 슬퍼하거든! 안 아프거든!"이다.
'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책이 있다. 인간만 찾아내서 파괴하는 무기가 개발되어 일순간 인간이 지구에서 싹 사라졌다고 치자. 1년이 지나면 고압 전선에 더 이상 전류가 흐르지 않고 매년 10억 마리씩 타 죽던 새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난다. 300년 후 흙이 차오르면서 넘쳐흐르던 댐이 무너지고 도시가 물에 씻겨 사라진다. 500년 후 교외 대부분이 숲으로 바뀌고 개발업자나 농민들이 처음 보았을 때 모습으로 돌아간다. 10만년 후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의 수준으로 떨어진다. 복구에 걸리는 시간이 겨우 10만년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지구를 걱정하는 건 얹혀사는 주제에 세입자가 주인집 가계부를 근심하는 것의 만 배쯤 웃기는 일이다. 아니 십만 배.
지구를 달달 볶으면 우리가 고달프고 후손이 고생이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좀 덜 파내고 덜 자르고 덜 버리는 것뿐이다. 그리고 가슴에 겸손이라는 단어를 새기고 또 새겨야 한다. 그게 인간이 지구에 대해 가져야 하는 마음 자세다. 이 코너 '명랑소설' 쓰면서 대신 사과를 여러 번 했다. 애국가에 사과했고 탈북자분들에게 사과했고 생면부지의 가수 로빈 깁에게도 사과했다. 또 사과한다. 지구야 미안, 내가 대신 사과할게. 그런데 이번에는 이유가 살짝 다르다. 미안해요, 주제넘게 건방 떨어서. 지구에 대변인이 있다면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꾸할 것 같다. 더 난리 쳐도 돼요. 지구, 괜찮아요. 인간, 너나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