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새벽과 심야, 런던올림픽에서 바벨을 놓치고 주저앉은 장미란과 몸을 틀며 도마 위를 나는 양학선의 모습은 국민의 눈과 가슴에 오래 머물렀다. 그 훌륭한 패배와 장한 승리를 보며 오늘의 우리 젊은이들을 떠올렸다.

스무 살 양학선은 금메달을 따낸 뒤 부모 얘기부터 꺼냈다. "전날 부모님이 좋은 꿈을 꾸셨다고 해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는 "우승하면 소박하고 아늑한 집을 지어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해 왔다. 그의 부모는 전북 고창의 논바닥 비닐하우스에 산다. 광주에서 아버지는 미장일을, 어머니는 공장 일을 하다 아버지가 재작년 어깨를 다쳐 농촌으로 옮겨 왔다. 양학선은 모아둔 후원금으로 논밭 3000평과 작은 집터를 고창에 마련했지만 집 지을 여력은 없었다. 이제 금메달을 땄으니 비닐하우스 생활을 면해 드리겠다는 소원도 이루게 됐다.

그는 선수촌에서 하루에 두 번 꼭 부모에게 전화해 안부를 여쭸다. 하루 4만원씩 나오는 훈련비를 아껴 한 달에 80만원씩 부쳐 드렸다. 그런 양학선도 온전히 착한 아들은 아니었다. 광주 달동네 단칸방에 살며 체조에 몰두했지만 가난과 훈련, 늘지 않는 실력을 못 견뎌 가출을 거듭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아들을 체조 스승 오상봉 감독 앞에 끌어다 놓고 "내 자식 아니다"고 했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시라"고 했다.

양학선은 힘들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했다. 어머니는 붕어를 낚아다 고아 먹이곤 했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아 내리는 아들의 발이 꽃처럼 예쁘다고 했다. 키 159㎝ 달동네 소년은 지금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릴 생각에 행복하다.

스물아홉 장미란은 마지막 시기에서 바벨을 떨어뜨렸다. 동메달을 향한 안간힘도 물거품이 됐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바벨을 손바닥으로 토닥이고 어루만졌다. 입술을 손에 대 키스를 보냈다. 바벨 위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중3 때부터 15년을 함께하며 역도의 삶을 무사히 마무리하게 해준 바벨에 감사했다.

장미란은 "역도는 정직한 운동이다. 훈련에서 들어 올렸던 중량 딱 그만큼을 들었다"고 했다. 메달을 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는 교통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며 작년 내내 부진했다. 그래도 국민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몸이 엉망이라고 실토하는 건 핑계라 생각하고 묵묵히 경기장에 섰다. 그는 오히려 "큰 사랑을 받았는데 응원해주신 분들을 실망시켰다"며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와 우정을 쌓아 온 김성근 야구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패자의 얼굴을 봤다"고 했다.

장미란과 양학선은 따지거나 셈하지 않고 누구를 탓하지 않는다. 모든 것 쏟아 바치고 감사할 줄 안다. 두 젊은이가 걸어온 길이 우리 젊은이들 가슴에 어찌 흔적을 남기지 않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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