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구군이 고향인 안혜진(28)씨는 고향을 떠나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타향(他鄕)살이를 했지만 안씨는 결코 고향을 잊을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양구 주민이 십시일반(十匙一飯) 모아준 150만원의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2007년 이화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안씨는 고향 양구에 있는 강원외국어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 돼 고향으로 돌아왔다. 안씨는 "타향살이를 하며 고향 어른들이 보내준 돈은 금전적인 측면보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더 큰 도움이 됐다"며 "내가 고향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선생님이 된 것처럼 고향 후배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어 고향에 있는 학교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선생님이 된 뒤 자신이 고향 주민에게 받은 장학금보다 많은 300만원을 고향 후배들에게 줄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경북 울릉군, 영양군, 인천 옹진군에 이어 전국에서 넷째로 작은 지방자치단체인 강원도 양구군에서 '기부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 양구의 옛 이름을 따 지어진 '양록장학회'가 기부 릴레이의 '베이스캠프'다.
양록장학회는 1996년 젊은 인재들이 속속 고향을 떠나가자 위기감을 느낀 군청에서 군 예산 1억2000만원을 내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지금은 '군민들의 장학회'가 됐다. 양록장학회에 조금이라도 성금을 낸 양구군민만 1806명(연인원)에 이른다. 양구 인구 2만2000명 가운데 군민 10명 중 1명꼴(8.2%)로 장학금을 기탁한 셈이다.
기부자들은 큰돈을 번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다. 칠순 잔치를 치르는 대신 자식들에게 1000만원을 받아 고스란히 장학회에 성금으로 낸 할아버지, 매달 20만원씩 장학회에 성금을 내고 있는 양구 시내버스 기사들, 세상을 떠난 전(前) 군수의 아내, 서울에서 귀촌한 치과의사, 보건소 직원, 평범한 농부 등 모두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다.
군(郡)에서 군민들의 세금을 갹출해 매년 출연하고 있는 기금과 군민들이 기부한 성금이 모여 양록장학회의 기금 총액은 어느새 69억4000만원에 달하게 됐다.
강원도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양구이지만, 장학금 규모는 강원도 내에서 최대급이다. 군청 관계자는 "장학금을 기부한 사람들도 많지만 그 장학금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도 인구의 10%가 넘는 2918명(26억여원)이나 된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100만원을 기부한 전창진 양구군청 주민생활지원실장은 "군민들 사이에서 기부가 거창한 게 아니란 인식이 퍼진 것 같다"며 "유행처럼 기부 행렬이 이어지는 모습은 우리가 봐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양구에서 장학회가 유독 번성할 수 있었던 데는 실향민들이 많은 지역의 특수성도 작용했다.
지난 2007년 장학회에 1억원을 기탁한 김동석(90)씨는 '보생당 약방' 주인이다. 60~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약방엔 낡은 나무 선반 위에 약재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김씨는 6·25전쟁 때 피란을 가다 북한 땅이 된 강원도 평강을 떠나 양구에 정착했다. 김씨는 고향을 떠나 평생을 의지하고 살았던 아내를 지난 2007년 먼저 떠나보낸 뒤 1억원 기부를 결심했다. 김씨가 낸 1억원은 아내가 생전에 10년 동안 부은 적금 9000만원에 평소 김씨가 모아둔 돈 1000만원을 보탠 것이다. 김씨는 "58년 전 전쟁통에 피란 가다 자리 잡은 양구가 나에겐 고향이나 마찬가지야. 타지에서 온 사람을 반갑게 맞아준 주민들을 위해서 뭐라도 하고 싶었지. 안 입고 안 먹어 모은 돈이지만, 아내가 살아있더라도 흔쾌히 기부하라 했을 거야"라고 말했다.
평생 모은 돈 700만원을 장학회에 기탁한 최봉례(89)씨도 6·25전쟁 때 피란 가다 남편을 잃고 춘천에서 평생 날품팔이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다 10년 전 친정인 양구에 정착했다. 1인용 매트에 이불과 베개가 가진 것의 전부라는 최씨는 노인전문요양원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다. 매달 25만원의 기초생활비를 받는 최씨는 요양원에 14만원을 내고 남은 돈 9만원과 평생 모아둔 저금을 털어 장학금으로 냈다. 최씨는 "평생 자식이 없는 것이 한(恨)이야. 50년 만에 고향에 오니 양구 학생들이 다 내 자식 같아 보이더라고. 죽기 전에 모아둔 돈도 또 기부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중·고교 시절 장학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던 학생들은 어느새 한복점 주인, 중학교 체육교사, 대기업 사원 등이 돼 자신이 받은 장학금 이상을 고향 장학회에 기부하고 있다.
양록장학회의 장학금 수혜자들이이제 사회에 진출해 장학금 기부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기부 바이러스가 결국 '군민에 의한, 군민을 위한' 장학회를 탄생시킨 것이다.
양구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양구에서 학교에 다닌 이효영(31)씨는 대학 시절인 2002년 장학회로부터 100만원의 장학금을 받았다. 성악가가 된 이씨는 지난달 5일 자선 독창회를 열어 모아진 성금 100만원을 장학회에 냈다. 이씨는 "내가 공부할 때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됐던 장학금이 생각나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주기 위해 장학회에 성금 기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군청 관계자는 "학창 시절에 장학금을 받았다가 사회에 나가 자신이 받은 금액보다 많은 장학금을 기탁하는 이들이 벌써 12명이나 된다"며 "지금은 허황된 생각일 수 있지만 앞으로 50년 100년 뒤에는 양구 양록장학회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장학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도 한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장학회 계좌에는 주민이 낸 성금 1억1600만원이 입금됐다. 지난 4월 양록장학회는 양구 출신 고등학생 102명, 대학생 117명을 선발해 3억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