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삼척시 남양동에 있는 삼척중앙시장에서 37년째 속옷 장사를 하는 전정자(71)씨. 전씨는 삼척 일대에선 '기부 천사 할머니'로 통한다. 작년 2월 100년 만에 왔다는 기록적인 폭설로 삼척중앙시장 가설 지붕이 붕괴됐을 때 전씨는 시장조합에 1억원의 기부금을 선뜻 내놓았다. 작년 11월에도 시장 상인을 위해 써달라고 조합에 또 500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 8월 남양동 가스 폭발로 보험도 들지 못한 영세 상인들이 큰 피해를 입자 1000만원을 또다시 내놓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찾은 전씨의 가게는 비어 있었고, 전씨가 키우는 고양이 한 마리만 가게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주변 상인들은 "잠깐 자리를 비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냥 돌아가라. 할머니 만나면 혼난다"고 말했다.

5분쯤 후 전씨가 가게로 돌아오자 상인들이 했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가 곧장 확인됐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하자 전씨는 "안 해! 싫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기자가 자리를 뜨지 않자 바가지에 물을 담아 와 "뿌린다!"고 외쳤다.

전씨가 워낙 주변 사람과 어울리지 않아 주변 상인 중에도 전씨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삼척중앙시장에서 이불 장사를 하는 전씨의 조카 김성용씨는 "나도 이모(전씨)한테 잘 안 간다. 워낙 말이 없고 혼자 지내길 좋아하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김씨를 통해 확인한 전씨의 기부 활동은 작년이 처음이 아니었다. 김씨는 "10년도 더 전에 삼척시 인근에서 큰 화재가 난 적이 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이 힘들게 이재민 생활을 하는 걸 보고 이모가 이불 수백만원어치를 사서 보내줬다. 2002년 태풍 '루사' 때문에 큰 피해가 났을 때도 돈을 많이 내셨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도 태풍이나 화재, 사고 등으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으면 전씨는 자신이 직접 돈을 갖다주거나 김씨를 시켜 구호 물품을 보냈다. 김씨는 "주변에 있는 복지관이나 고아원에 속옷과 이불 등을 보내줬던 기억이 많이 난다"고 했다.

강원도 삼척중앙시장에서 속옷 장사를 하는 ‘기부천사 할머니’ 전정자(71·오른쪽)씨. 지난달 26일 오후 “누구에게 알리려고 한 일이 아니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는 전씨의 모습을 멀리서 카메라에 담았다.

전씨가 이렇게 기부를 열심히 한 이유는 뭘까. 김씨는 "이모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렵게 사셨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뭐 하나에도 돈을 함부로 쓰지 않으신다"면서 "화장도 한번 하신 걸 본 적이 없을 정도인데, 그러면서도 어려운 이웃 돕는 데는 주저하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장 상인도 "저 조그만 가게에서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나. 할머니가 기부한 돈은 정말 차곡차곡 열심히 모은 돈 다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전씨는 50여년 전 남편과 함께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장사를 시작했다. 수도권 일대는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고, 삼척에 와서는 몸이 아픈 남편을 대신해 홀로 리어카를 끌었다. 37년 전 이곳 중앙시장에 조그만 가게를 낸 전씨는 19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론 내내 혼자 자리를 지켰다. 전씨의 외동딸은 결혼해 서울에 살고 있다.

김씨는 "이모가 가장 싫어하는 게 그런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척중앙시장조합 관계자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그렇게 잘 지키는 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합의 배영호 상무는 "힘든 사람들 돕고 싶다고 하시더니 계좌로 생각지도 못한 큰돈을 입금하신 걸 알고선 조합 측에서 할머니한테 감사 인사를 하러 여러 번 찾아갔지만 대꾸 한번 제대로 못 들었다"며 "작년에 1억원 기부 사실이 알려졌을 때 때마침 재해 지역을 방문한 김황식 국무총리가 할머니를 만나자고 했지만 전씨가 면담을 거절해 시장에서 잠깐 악수만 하고 돌아갔다"고 말했다.

삼척시가 수여하는 '삼척시민상'을 주기 위해 지역 주민센터에서도 여러 번 전씨를 찾았다. 삼척시민상에 추천하기 위한 서류를 구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씨는 "그런 거 받으려고 한 거 아니다. 필요 없다. 돌아가라"고 단칼에 거절했다. 남양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상을 준다고 하면 부끄러워하시는 분은 많아도 다들 응해 주시는데, 할머니가 워낙 단호해서 찾아간 우리가 민망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중앙시장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찾아간 기자에게 전씨는 "왜 아직도 안 갔어!"라고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됐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 빨리 가!" 전씨는 이렇게 기자를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