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키스’는 물 흐르듯 부드러웠고, 강렬했다. 허공을 가르는 그녀의 몸놀림은 애절했고, 눈빛은 가련했다.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지는 소녀는 그렇게 청중을 사로잡았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돌아왔다. 20개월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무대였다. ‘뱀파이어의 키스’ 삽입곡에 맞춰 새로 선보인 무대는 그녀에게 꼭 맞는 옷이었다. 그야말로 '급'이 달랐다.
김연아는 8일 독일 도르트문트서 열린 NRW트로피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TES) 37.42점과 예술점수(PCS) 34.85점을 받아 합계 72.27점으로 1위에 올랐다. 지난 2006년 시니어 데뷔 후 개인통산 5번째에 해당하는 높은 점수다. 김연아가 받은 72.27점은 이번 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서 우승한 아사다 마오(일본)의 쇼트 점수(66.96)보다 6점 가까이 높다.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 진출 커트라인인 최소 기술점수 28.00점도 가뿐히 뛰어넘었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내년 세계선수권에 나서려면 쇼트에서 28.00점, 프리에서 48.00점을 확보해야 한다.
기술은 이전보다 더 정교해졌고, 몸짓 하나, 눈빛 하나에서 느껴지는 완숙미는 이전보다 더 풍부해졌다. 예술 점수는 통산 최고점을 기록했다. 대표 기술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기본 10.10점+가산점 1.23)를 완벽하게 해내며 연기를 시작한 김연아는 단독 트리플 플립에서도 가산점 1.40을 받았고, 플라잉 카멜 스핀 역시 0.75의 가산점을 추가했다. 레이백 스핀은 안정적이었고, 김연아 특유의 이너바우어는 비련의 여주인공 몸짓 그 자체였다. 더블 악셀과 스텝 시퀀스에서도 가산점을 받은 김연아는 체인지풋 콤비네이션 스핀으로 가산점을 추가하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더블 악셀과 트리플 플립은 ‘교과서’ 다웠다. 더블 악셀에서 약간 흔들림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물 흐르듯이 여유롭게 처리하며 ‘전설’다운 모습을 과시했다. 관중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고, 김연아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김연아는 연기 뒤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의 엄청난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있다”며 그 간의 마음고생을 잠시 내비쳤다. 이어 “‘실수하면 안 된다’는 게 항상 머릿속에 있다. 점수에 신경 쓰기 보다 기술적인 면에 더 집중했다”며 “이 정도 점수를 받을 줄은 예상 못했다. 오늘 점수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김연아는 9일 오후 '레미제라블' 주제곡으로 프리프로그램을 연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