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뀌면 그도 바뀔까요? 내가 이만큼 다가서면 그녀도 그만큼 다가올까요? 답을 모른 채로 첫발을 뗐다가 우리는 곧 실망합니다. 왜 너는 도무지 변할 줄을 모르느냐고 화를 내며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전혀 달라지지 않은 나 자신. 그가 바뀌기 전엔 나도 절대로 바뀔 수 없는 걸까요? /홍여사 드림
우린 밤의 공원을 걷고 있습니다. 늦은 시각이지만, 공원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낮보다는 서늘하고 한적한 밤을 택해, 갇혀 지내는 스트레스를 풀고 나왔을 사람들. 그중에는 우리 같은 중년 부부들이 많습니다. 말없이 앞만 보고 걷는 부부도 있고,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걷는 부부,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은 도망치듯 빨리 걷는 부부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손을 맞잡고 걷는 부부는 여간해선 안 보입니다. 우릴 보고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저 나이에, 아직 저렇게 다정한 부부도 있긴 있구나.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니지요. 우린 남달리 다정한 부부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 서로 소 닭 쳐다보듯이 해온 사이입니다. 그럼에도 보란 듯이 손을 잡고 밤 산책 하러 다니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6월, 코로나의 답답한 여름이 시작되던 무렵, 제가 남편에게 제안했거든요. 내 요구를 들어주면 나도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요. 남편은 요구 사항이 뭔지 묻더군요. 저는 남편의 눈을 보며 당당히 말했습니다. 하루 한 번 힘껏 포옹해 주고, 일주일에 한 번은 나랑 손잡고 산책 다니기! 제 말을 들은 남편은 얼떨떨한 동시에 뭔가 의심스러운 모양이었습니다. 이 여자가 갑자기 이런 황당한 소리를 하는 진짜 이유가 뭘까 하는 표정이더군요. 나는 남편을 안심시켰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둘만 집에 남고 보니 부부간에 다정한 사람들이 제일 부럽더라. 우리가 갑자기 다정한 부부가 될 수는 없지만, 다정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짓을 흉내 낼 수는 있지 않나. 그럼 남들은 우리가 꽤 다정한 줄 알고 부러워하겠지. 그런 부러운 시선을 나도 한번 받아보고 싶다.
내 설명을 남편이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그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더군요. 그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라며, 남편은 즉시 나를 끌어당겨 안았습니다. 1, 2, 3, 4, 5… 속으로 다섯을 세고 우리는 슬그머니 떨어졌지요. 기분이 묘하더군요. 너무나 익숙한데, 너무도 어색했습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목소리를 더욱 높여 말하더군요. “산책은 당장 오늘 밤에 시작하지.”
그날 이후로 석 달이 흘렀습니다. 흐지부지될 줄 알았던 우리의 계약은 남편 특유의 모범생 기질 덕분에 여태 지켜져 왔습니다. 매일의 포옹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손잡고 산책은 주로 수요일 밤에 행해졌죠. 솔직히 말하면, 남편이 다가와 무거운 팔을 감는 아침의 포옹은 여전히 어색하고 민망합니다. 그에 비해 수요일 밤의 산책은 은근히 기다려지는 부부의 시간으로 자리 잡았죠. 연애 시절 전기가 통하던 그 느낌은 아니지만, 날 선 대화 대신 손을 통해 전해지는 체온의 따뜻함이란 게 아직 있더군요. 우린 손을 잡은 채 말없이 이곳저곳을 걷습니다. 그렇게 걸으며 저는 혼자 생각하곤 합니다. 이렇게 다정히 지낼 수도 있었는데,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그토록 피 흘려가며 싸웠던 걸까?
신혼의 단꿈은 겨우 몇 달, 우리는 첫해가 다 가기도 전에 부딪치기 시작해 몇 년을 그야말로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남편은 아마 손쉽게 ‘고부 갈등’을 이유로 꼽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제가 못 견뎌 했던 건 시부모님이 아니라 남편이었으니까요. 바람막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내의 애로와 고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텐데, 남편에겐 그런 면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중심이고, 각자의 원가족은 그다음이어야 할 텐데, 남편에겐 그 순서가 뒤집혀 있었습니다. 나란 존재는 뭔가 싶으니, 저는 점점 더 치졸하고 까칠한 사람이 되어가더군요. 원래의 나라면 선선히 응하고 넉넉히 내어줄 일도, 자꾸 브레이크를 걸고 입을 내밀게 되더란 말입니다. 물론 그런 다툼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선에서 우린 타협하고, 서로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게 되었지요. 문제는 그 이후로 우리 사이가 예전 같지 않았다는 겁니다. 다투는 대신, 모른 척하고, 거리를 두다 보니 둘 사이에 냉기가 스며들었죠. 그렇게 재미없고 지루하게 십수 년을 살아온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다 싶습니다. 남편을 뜯어고칠 능력이 안 되면 차라리 내가 다 져주고라도 하하 호호 웃으며 살았어야 하는데, 알량한 자존심상 그러지 못했지요. 그러다 나이 오십에 이르고야, 남편에게 안아 달라, 손잡아 달라 요구하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습니다. 곁에서 걷는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그도 역시 지나온 날의 어리석음을 후회할까요? 공감력이 부족했던 젊은 시절의 자신을 돌아보고 있을까요?
문득 남편의 요구 사항이 궁금해집니다. 내 요구를 들어주면 당신 요구도 들어주겠다고 해놓고, 정작 무엇을 바라는지는 아직 묻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등산을 같이 가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올빼미 생활을 그만 접고 10시에 나란히 잠자리에 드는 건강한 생활을 하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뭐가 있을까요? 그가 내게 바랄 것이….
“나야 당신한테 다른 거 바라는 거 없어. 딱 한 가지만 부탁할 뿐이지.”
“그게 뭔데?”
저는 정말로 궁금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빙긋이 웃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대답합니다.
“어머니한테 매일 전화 드리기.”
“어머니…?”
“요즘 얼마나 우울하시겠어?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갇혀 계시려면….”
아, 바로 이거였습니다. 젊은 시절 나를 미치게 하던 남편의 문제점 말입니다. 부부 사이를 먼저 다독인 뒤, 부모님을 부탁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남편은 가장 행복하거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가 아닌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서, 제 속을 뒤집어 놓곤 했지요. 그러고 보니 그는 여태 하나도 변한 게 없네요.
그러나 저까지 예전 모습 그대로일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져줄 걸 그랬다고 십 년 뒤에 또다시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대답을 잘해야 합니다. 남은 삶 이 남자를 잘 써먹으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작전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순순히 그가 듣고 싶어 할 말을 해주었습니다.
“알았어. 매일은 못 해도 더 자주 전화 드릴게. 당신의 유일한 부탁이라는데 그 정도도 못 하겠어?”
“그거 말고야 뭘 더 바라? 모든 면에서 완벽한 마누란데.”
남편은 잡은 손을 더욱 힘주어 잡으며 기분이 좋아서 싱글싱글 웃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겉으로는 활짝 웃습니다. 인제 와서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한 채로 말입니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여자와 잠깐 눈이 마주칩니다. 얼른 눈을 피하는 그 여자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을 저는 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늘 하던 생각이니까요.
아, 저 사람들은 평생 서로 잘하고 살았나 보다. 부럽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