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중앙대 공연영상창작학부) 시절 내내 방송 일 한번 잡아보려고 고군분투했어요. 오디션 배역 안 가리고 뛰어다녔고, 소속사도 구하려 애써봤지만 쉽지가 않더라고요. 돌파구처럼 찾았던 패션 디자인을 통해 인제야 조금 인정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걸그룹‘에이핑크’원년 멤버 출신 디자이너 홍유경이 패션 학교‘에스모드 서울’졸업 작품전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의상 옆에 섰다. 작품성에 상업성도 갖춰 많은 관심을 모았다. /고운호 기자

자신이 만든 아이보리색 니트를 입은 디자이너 홍유경(27)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 최근 그는 국내 대표적 패션학교인 ‘에스모드 서울’ 제30회 졸업 작품전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에스모드 서울은 179년 전통 프랑스 패션 학교인 ‘에스모드 파리’의 분교. 디자이너 ‘준지’ 정욱준, ‘김해김’ 김인태 등이 이 학교를 나왔다. 홍유경이 졸업 작품으로 선보인 의상은 부드러운 니트와 단단한 가죽을 유연하게 연결한 드레스와 상의. 단아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만듦새다. 심사를 맡은 한복 디자이너 차이 킴은 “예술성이 돋보이면서도 가장 사고 싶은 옷”이라고 했다.

홍유경은 “아이돌일 때 전쟁 같은 경쟁 속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그 어떤 도전도 두렵지 않았다”고 했다. 2011년 걸그룹 ‘에이핑크’의 원년 멤버로 데뷔해 2013년 탈퇴하기까지 인기를 누렸다. 정은지·손나은·윤보미 등 현재 드라마·예능 등에서 활동하는 멤버들과도 가끔 연락하고 지낸다 했다. “불안했죠. 미래는 남들이 책임져 주지 않잖아요. 에스모드 입학 전 2018년에 찍은 모 광고에선 엄마 역할로 나왔거든요. 주변에선 아직 어린 데 괜찮겠냐고 걱정했지만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아버지는 연매출 1900억원대 중견기업인 DSR 제강의 홍하종 대표다. “아이돌이든 배우든 방송에 보이는 직업이라 또다시 상처받지 않을까 말리셨어요. 저 혼자 힘으로 무엇이든 반드시 해내고 싶었죠.”

2019년, 3년 과정을 2년 만에 졸업하는 ‘인텐시브’ 과정에 입학한 그는 “쏟아지는 과제에 밤새우지 않은 날을 세는 게 더 빠를 것”이라고 했다. “바늘에 하도 찔리다 보니, 이젠 바늘이 살을 통과해도 그런가 보다 해요(웃음). 아이돌일 땐 시키는 대로 입고 말하고 훈련을 받아서 ‘창작’과는 좀 멀다고 생각했어요. 의상을 만들면 ‘없던 디자인을 가져오라’면서 ‘네 색깔은 잃지 말라’고 당부하던 교수님들 덕에 스스로 벽을 깨 나간 것 같아요.”

작품 발표 때 사진, 헤어·메이크업, 모델 등도 스스로 알아서 진행했다. 어린 시절 배웠던 현대무용을 콘셉트로, 모델이 해야 할 포즈를 미리 찍어 스튜디오에 붙여놓고 직접 시연했다. 작곡도 배우고 있다. 해외 디자이너들이 패션쇼를 열 때 음악부터 안무와 연기 등 전체를 연출하는 걸 보면서 그만의 쇼 음악을 만들고 싶어서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실패를 이미 맛봤잖아요. 혼란과 혼돈도 있었지만, 극복하며 위로와 자신감을 얻었죠. 다양한 분야에 접목할 수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