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그는 무대를 동경하는 샐러리맨이었다. 몸은 금강제화로 출근했지만 마음은 대학로를 향했다. 갈망이 끓는 냄비 뚜껑처럼 달그락거릴 땐 ‘연기(演技)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 하는 거야’라며 억눌렀다.

서현철은 연극 '너와 함께라면' '웃음의 대학' 등에서 희극 연금술의 극점을 보여준 배우다. 그는 "'스페셜 라이어'에서는 정태우, 테이, 정겨운 등 저보다 한참 동생들과 극중에서 친구 사이다. 젊어 보이려고 수염 깎고 염색하고 짧게 말하면서 끝을 탁탁 올려준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개막한 연극 ‘스페셜 라이어’(연출 이현규)는 1998년부터 달려온 국내 최장기 흥행작이다. 두 집 살림을 하는 택시운전사가 이중생활이 들통날 위기를 거짓말로 넘기려 하지만 상황은 점점 꼬여간다. 배우 서현철(56)이 말하고 움직일 때마다 객석에선 전염성 강한 웃음이 연쇄 폭발한다. 이 코미디의 진앙인 셈이다.

30년 전에 넥타이 매고 구두에 광내던 그 샐러리맨. 이제 ‘코미디 연금술사’로 불리는 서현철은 “코로나로 답답하고 우울하다는 분들이 많아 올해는 이 연극에 ‘웃음 되찾기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붙였다”며 “젊을 땐 연기 욕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꾸준히 가는 배우’가 목표”라고 했다.

'스페셜 라이어' 무대의 서현철. 그는 "정태우, 테이, 정겨운 등 저보다 한참 동생들과 극중에서 친구 사이"라며 "젊어 보이려고 수염 깎고 염색하고 짧게 말하면서 끝을 탁탁 올려준다"고 했다. /파파프로덕션

◇서른한 살에 던진 사표

금강제화에서 일했는데 안정적이었지만 내 길은 아닌 것 같았어요. 주말마다 국립극장 문화학교에 다니며 연극·춤·노래를 배웠지요.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극단 작은신화 최용훈 대표를 찾아가 “연극이 하고 싶으니 받아달라”고 했지요. 그때 들은 첫마디요? “멀쩡한 직장 있는 분이 왜 오셨나?”(웃음) 서른한 살에 연극 하겠다고 사표를 던졌으니 집에선 난리가 났고요.

늦었지만 중대한 선택을 했는데 무를 순 없잖아요. ‘나이 먹어서 혼자 라면만 먹을지언정 끝까지 가보자’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지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아슬아슬할 때 극단 바깥에서 캐스팅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첫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2010)가 전환점이 됐습니다. 이렇게 코미디를 많이 하게 될 줄은 몰랐지요. 그런데 연기로 얼굴 알린 것보다는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가 더 컸어요(그는 김구라가 ’90초 토크의 달인'이라 부르며 말을 끊지 않는 거의 유일한 게스트다).

◇코미디란? 호흡과 타이밍

‘코미디 연금술사’라는 호칭은 부담스러워요. “이 대목에서 재밌게 하고 싶은데 어떡하면 좋을까요?”라고 묻는 후배가 많긴 해요. 코미디 연기는 호흡과 타이밍에 따라 결과가 하늘과 땅 차이예요. 우스운 얘기도 타이밍을 놓치면 썰렁해집니다. 또 앞 사람 대사의 호흡을 받고 치느냐, 전혀 안 받고 생뚱맞게 땅! 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져요.

애드리브요? 이순재 선생님과 함께 70대 노인을 연기할 때인데 어느 날 장난기가 발동하셨어요. 분장실에서 “현철이, 내가 뭐 한마디 할 수도 있어”라고 예고하셨죠. 무대에 나갔더니 원래 대사가 “어, 잘 있었어?”였는데 “풍 맞은 건 어때?” 하시는 겁니다. 동료 배우라면 “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러고 넘어갈 텐데 이순재 선생님이잖아요. 몸을 조금씩 비틀면서 애드리브를 던졌지요. “어, 제대로 맞았어!”

연극 '스페셜 라이어'에서 작정하고 웃기는 배우 서현철(왼쪽). /파파프로덕션

◇초심, 평심, 동심

후배가 진지하게 “제 연기 괜찮아요? 계속해도 되겠어요?” 물어올 때 참 난감합니다. 허황되게 “너 잘될 거야” 할 순 없잖아요. 제가 봐도 실력이 없는 것 같은데 잘되는 배우가 있고 연기를 정말 잘하는데 안 풀리는 배우도 있거든요. “네가 듣고 싶은 얘기가 ‘잘될 거니까 계속하라’는 거잖아. 더 버텨보자”고 해요. 영화 ‘더 킹’으로 유명해진 배우 김소진도 옛날에 그랬어요. 그땐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왜, 잠깐 지루해졌냐?”고 대꾸했지요. 배우는 부름을 받아야 해 늘 불안한 직업이에요.

저는 초심, 평심, 동심 등 삼심(三心)을 지키려고 해요. 동심은 집사람(배우 정재은)이 제일 많은 것 같고요. 생활은 전보다 넉넉해졌는데 마음이 오그라들 땐 초심을 생각해요. 그럼 지금 불만은 복에 겨운 소리죠.

역대 최강의 캐스팅이라고 홍보하는 연극 '스페셜 라이어'. 전 국민 웃음 되찾기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달았다. /파파프로덕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