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살면서 성공과 실패, 둘 중 뭐가 더 잦을까요?”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가수 김범룡(62)이 대뜸 물었다. 웬 선문답인가 싶었는데 그가 다시 말했다. “당연히 후자가 많죠. 희소성 때문에 성공이란 말이 있는 거예요.”
그의 이런 생각이 지난 2일 발매한 9집 ‘인생길’ 제목에 그대로 담겼다. 8집 돈키호테(2003년) 이후 19년 만에 낸 정규앨범. 포크 록으로 편곡한 동명 타이틀곡은 친한 동생이 술자리에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감명 받아 쓴 가사에 멜로디를 붙였다. “가사 ‘울퉁불퉁 시골길’이 제 인생길을 뜻한답니다.”
김범룡이 처음부터 ‘울퉁불퉁 인생’을 걸은 건 아니다. 1985년 데뷔곡 ‘바람 바람 바람’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현아’ ‘겨울비는 내리고’ ‘카페와 여인’ 등 직접 쓴 노래를 줄줄이 히트시켰다. 1990년대엔 제작자로 변신, ‘사랑을 할 거야’ ‘준비 없는 이별’ 등 직접 쓴 발라드곡으로 ‘녹색지대’를 인기 그룹으로 성공시켰다. 꽃미남 외모와 여심을 녹이는 미성(美聲), 작사·작곡 재능까지. 그의 사전에 좌절은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시절 인기 흔적이 호적에도 남았다. 그의 주민번호를 알아낸 어느 광팬이 ‘김범룡’으로 막도장을 파서 혼자 몰래 혼인 신고를 했다. “겨우 말소시켰지만 아직도 제 호적에 그 흔적이 줄 그어진 채 아내 이름보다 위에 남았어요. 기록만 보면 한 번 갔다온 사람이죠(웃음).” 다행이 그 당시 아내와는 비밀 연애 중이었고, 아내가 그런 사연을 잘 알았기에 결혼할 때 호적 문제를 이해해줬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2006년쯤 사업 실패로 순식간에 45억원 빚더미에 올랐다. 힘든 순간 음악적 성공은 오히려 걸림돌이었다. “개인 회생 신청을 법원에서 안 받아줬어요. 직접 쓴 히트곡이 워낙 많아 향후 70년 이상, 매년 상당한 저작권료가 나올 거라면서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결국 빚 때문에 저작권료, 집, 적금까지 저당잡혔다. 닥치는 대로 온갖 공연을 해 2017년 겨우 빚을 다 갚았다.
그는 “빚 갚고, 본격적으로 2019년 신보를 내려는데 코로나가 왔다”고 했다. “공연이 줄취소됐어요. 한편으로 그 덕에 곡 쓰기에 매진했죠. 앨범 완성도는 오히려 만족스러워요.” 보다 탄탄하고 원숙해진 저음을 앨범에 얹었다. “미성이 주특기던 과거보다 소리가 깊어졌어요. 남들 노래 프로듀싱을 자주 하다 보니 제 노래도 늘더군요.”
오는 14·15일 서울 양천구 로운아트홀에서 단독 공연도 연다. 가족들 외에도 두 살 반려견, 네 살 반려묘와 함께 지내는 그는 “첫 공연 수익금 일부를 유기동물보호소에 기부한다”고 했다. 7월부턴 전국 투어도 할 계획. 여기서 선보일 신곡 중 특히 애착 가는 곡은 ‘다시 한번’이라고 했다. “코로나 시국 힘들었던 자신과 국민을 위로하는 노래”라서다. “‘다시 한번 일어나’. 가장 힘들 때 스스로 다짐한 말이자 다른 이에게도 해주고픈 말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