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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처분(殺處分)이라는 단어에는 모순적이며 딱한 의미가 깃들어있어요. 어떤 상황으로 인해 사람이 짐승의 목숨을 앗을 수 밖에 없는 불가피성의 의미가 내재돼있거든요. 누군들 멀쩡한 생명체들을 이유없이 처분하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저런 까닭으로 일어나는 살처분 현장에서 이를 실행하는 관계자들 분께 깊은 존경과 위로의 마음을 가집니다. 사람에게 위해를 끼친 짐승에 대한 살처분이야 마땅하겠지만, 감염병 예방 등 불가피한 이유로 살처분을 강제 집행하는 심정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지구의 주인이 사람인 이상, 살처분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냉장-냉동 2단계에 거쳐 48시간 살처분 과정에 있는 사탕수수 두꺼비. /호주 ABC. Terri Shine

다만 동물을 권리를 가진 존재로 보는 시선이 요 몇 년사이 우세해지면서, 살처분에 대한 관점도 달라지고 있어요. 어차피 불가피하게 진행될 거라면, 희생 주체들을 최대한 배려하는 인도적 살처분이 필요하다는 거죠. 이런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행사가 최근 열렸습니다. 호주 동부 일대에서 14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 연례행사인 ‘사탕수수 두꺼비 박멸대작전(The Great Cane Toad Busting)’입니다. 캥거루·코알라·오리너구리의 땅 호주에서 느닷없는 두꺼비 박멸 작전이 실시된 곡절이 있습니다.

정면에서 본 사탕수수 두꺼비의 모습. /FAME.ORG.AU

1935년 농민들이 해충 구제용으로 중남미 원산지인 사탕수수 두꺼비를 들여서 풀어놓으면서 재앙이 시작됐습니다. 한국에서 두꺼비는 생태계의 중심축이면서 전설과 전래 동화 등을 통해 든든하고 사려깊은 존재로 등장하죠. 하지만, 호주는 원래부터 두꺼비의 땅이 아니었어요. 놈들은 괴물이 돼서 호주 토착 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두꺼비를 비롯해 상당수 두꺼비들은 독을 품고 있죠. 하지만, 사탕수수 두꺼비의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초강력 독입니다. 토착 곤충과 물고기들을 거침없이 먹어치우면서 호주 토종 양서류들의 씨까지 말렸어요. 더구나 이 두꺼비를 내름 집어삼킨 포식자들이 퍼진 맹독에 시름시름 죽어나가는 일도 잇따랐죠. 채 반세기가 안돼 사탕수수 두꺼비는 호주 생태계를 점령하는 신종괴수로 등극했습니다. 양서류나 파충류는 대개 나이를 먹어도 노화없이 성장을 멈추지 않습니다. 호주땅에 마땅한 천적이 없다보니 천수를 누리면서 무지막지하게 커가는 괴물 두꺼비들도 발견됩니다. 아래 사진처럼요.

지난해 포획된 거대한 크기의 사탕수수 두꺼비. 두꺼비(toad)와 거대괴수 고질라의 이름을 합성해서 '토드질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Watergum Facebook

만시지탄속에 환경단체과 지방자치단체가 이 괴수의 박멸에 나섭니다. 현장 연구가들과 양서류 생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박멸 프로그램을 짜고, 주민들을 참여시킵니다. 그렇게 해서 대표적인 환경 NGO 워터굼의 주도로 ‘박멸 대작전’이 정기적으로 열립니다. 이번 박멸대작전으로 모두 3만2343마리의 성체 두꺼비와 1만8222마리의 올챙이가 제거됐다고 하네요. 올챙이요? 그렇습니다. 무시무시한 번식력을 감안하면 아예 올챙이 때 박멸하는 것도 방법이죠. 올챙이를 포획해 살처분 직전의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한 번 보실까요?

이 행사의 관건은 ‘뒤처리’입니다. 사람 입장에서는 혼이 빠져나간 사체들을 어떻게 하면 깔끔하고 뒤탈없이 처리하느냐이죠. 반면 짐승의 입장에서는 가능한한 고통없이 이 세상의 삶을 떠날수 있게 해주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숲과 길을 점령한 두꺼비떼에 경악해 크리켓 라켓을 휘두르거나, 콘크리트 바닥에 패대기치거나, 아니면 엉금엉금 기어가는 두꺼비들 위를 차로 뿌직 지나가는 방식으로 박멸을 했대요. 학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런 방법들은 두꺼비 입장에서도 고통이 극대화된 최악의 죽음일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쌓여가는 사체들이 어떤 모습을 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합니다.

호주의 환경단체 '워터굼(Watergum)'이 만든 사탕수수 두꺼비 박멸 계도 포스터.

그래서 워터굼 관계자들이 고안한 게 ‘2단계 살처분’입니다. 과정은 간단합니다. 플라스틱 상자와 평범한 냉장고만 있으면 그만이예요. 작업은 두 단계에요. 먼저 산채로 포획된 두꺼비들은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넣습니다. 빠져나오지 않도록 봉하되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해줍니다. 이렇게 두꺼비들이 담긴 상자를 우선 냉장칸에 집어넣습니다. 냉장고 속의 서늘한 기운에 두꺼비들은 서서히 수면 상태로 접어듭니다. 몸에 찬피가 흘러 주변 환경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들이 겨울잠에 빠져들 듯 시나브로 두꺼비들은 서서히 잠에 빠져듭니다.

이 과정에서 두꺼비들은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습니다. 이렇게 24시간을 보낸 뒤 두꺼비들이 떼로 잠들어있는 상자를 꺼내서 이번에는 냉동칸으로 옮겨넣습니다. 이 얼음장속에서 다시 24시간을 보내요. 그 시간 동안 무의식 속에 곤히 잠들었던 두꺼비의 몸은 얼어붙어갑니다. 몸뚱아리에는 서리가 내리고, 피가 흐르던 사지는 냉동한 동태처럼 딱딱해집니다. 뇌·심장·허파·간·정소와 난소 등 모든 생명 기관들이 영구히 작동을 멈추면서 혼이 스르르 빠져나갑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서서히, 그리고 하나의 고통도 없이 진행됩니다.

냉장->냉동 2단계로 48시간에 걸쳐 사탕수수 두꺼비를 살처분하는 개념오. /Watergum

48시간동안 진행되는 이 살처분은 과정에서 박멸 대상에 대해 인간이 가지는 애틋하고 거룩한 감정이 켜켜이 묻어납니다. 이 작업의 모토는 이렇습니다. ‘너희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이게 너희 잘못은 아니란다.’ 토종 생태계를 지켜야 하는 절박함과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품위유지를 꾀하는 고뇌 사이에서 고안된 이 2단계 살처분을 통해 포획된 수많은 두꺼비들은 고통없이 세상과 작별을 고합니다.

냉장과 냉동 2단계를 거쳐 최종 살처분된 두꺼비 사체. 이들은 거름으로 쓰이게 된다. /canetoadsinoz

그렇다면 왜 냉동시키기 전에 굳이 냉장단계를 거칠까요? 양서류 생태 연구결과 이들을 바로 냉동실로 보낼 경우 신경이 얼어붙으면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닫힌 냉동칸안에서 두꺼비들은 극한의 추위에 몸부림치면서 얼어죽어가는 것이죠. 하지만 냉장단계를 통해 마취상태에 들어간 이들은 고통없이 저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처럼 2단계 살처분은 냉장고와 양동이, 상자 정도만 있으면 치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냉장고·냉동고 음식들과 함께 둔다는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죠. 그래서 ‘워터굼’은 창고에 넣을 ‘살처분 전용’ 냉장고를 장만할 것을 권하지요. 냉장고를 둘 만한 사정이 안되는 경우를 대비해서 이 단체에서는 박멸 대회 기간 곳곳에 임시 관리소를 차려놓고 두꺼비들을 받아서 ‘위탁 살처분’도 진행했습니다.

살처분의 일환으로 포획된 사탕수수 두꺼비의 올챙이들 /Watergum

이렇게 2단계 살처분을 거친 두꺼비의 몸뚱이는 살아있는 듯, 온전하고 몸뚱이에 눈도 치켜떠있습니다. 그 몽글몽글한 눈망울이 이렇게 말해주는 듯 해요. “고통없이 죽여줘서 고맙소. 언젠가 다음 세상에서 아름답게 재회하길 바라오.” 이 애틋한 살처분속에 혼이 빠져나간 두꺼비 사체들은 인간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희생합니다. 이들의 몸뚱이로 퇴비를 만드는 거예요. 짧게는 몇주, 길게는 몇 달까지의 작업을 거쳐 이들의 몸이 거름으로 숙성됩니다. 거룩한 발효 과정에 비할 수 있을 거예요.

여느 두꺼비알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사탕수수 두꺼비의 알. /Watergum


살과 뼈가 녹아들어가는 동시에 몸을 감싸고 있던 독기가 서서히 정화돼요. 우툴두툴하고 당당했던 몸집의 두꺼비가 흐물흐물 녹아들고 문드러지면서 마침내 대지와 합일합니다. 두꺼비의 몸이 육화한 이 영양만점의 거름더미는 호주 대지를 비옥하게 해주며 식물에게 넉넉한 영양분을 공급해줄 것입니다. 생태계의 맨 밑을 든든히 떠받쳐주는거죠. 이 정도면 제법 명예로운 환생이 아닐까요?

살처분한 두꺼비 사체가 두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Watergum

물론 모든 여건상 이런 ‘2단계 살처분’이 가능할 수는 없습니다. 48시간이나 기다리기 곤란 한 상황일때가 더 많을 거예요. 그래서 지역사회에서는 이 외에도 다양한 ‘인도적 살처분 방법’을 보급하고 있는데요. 그 중 가장 빠른 시간에, 고통없이 마무리하는 살처분 방법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 ‘눈깜짝할사이 목베기(stunning decapitation)’입니다. 한 손으로 두꺼비의 뒷다리를 잡아 저항하지 못하게 한 뒤 두 눈 뒤에 있는 급소를 정확하게 해머 등으로 가격해서 정신을 잃게 한다음, 재빠르게 귓바퀴 뒤에 있는 가상의 절단선을 따라 날카로운 칼날로 신속하게 분리하는 것입니다.

사탕수수 두꺼비에 대한 '눈깜짝할 사이 목베기' 살처분 개념도. 가상의 절개선(왼쪽 붉은선)을 따라 신속하게 절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ANZCCART

과정 자체는 충격적일 수도 있지만, 제대로 이행만된다면 가장 빠르고 고통없이 완결될 수 있어요. 문제는 톱니바퀴처럼 신속하게 맞물려야 하는 과정에 조금이라도 틈이 생길 경우, 두꺼비에게도 사람에게도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어요. 이런 상황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 방법으로 살처분할 경우, 숙련된 경험자가 심신미약자가 없는 상황에서 진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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