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경성의 아파트’(집)에 따르면 1930~40년대 경성엔 이미 다수의 ‘아파트’가 있었다. 3~5층짜리가 많았고 주로 임대용 주택이나 일본 기업의 사택으로 쓰였다. 그때의 아파트를 지금과 바로 비교할 순 없다 해도, 이런 주장은 당시 사람들이 모두 한옥이나 초가집에 살았으리라는 통념을 뒤집고 서울의 옛 풍경을 새롭게 드러내는 것이다.
일본인 오오세 루미코(46)씨는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건축가(권이철), 건축과 교수(박철수·황세원)와 함께 이 책을 썼다. 처음 한국에 온 2001년 이후 한때 한국 여행 정보 사이트의 필진으로서, 최근엔 자유기고가로서 전국의 근대 건축물을 답사해온 경험을 살렸다. 최근 만난 그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애호가로서 (건축에 대해) 자유롭게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게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성의 아파트 중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들도 있다. 오오세씨는 “남아 있는 아파트들은 거의가 돌아다녀 본 곳들”이라고 했다. 예컨대 ‘조선과 건축’ 1930년 12월 호에 소개된 남산동 미쿠니(三國) 아파트는 평범한 원룸처럼 외장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건물의 기본 형태는 유지한 채 주거용으로 쓰이고 있다. ‘회현동 미쿠니아파트’로 불려 온 이 건물에 대해 오오세씨는 2013년의 답사기에서 “소재지가 남산정(町·현재 남산동)이니 남산동 미쿠니아파트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번 책에서 이 건물의 명칭은 남산동 미쿠니아파트로 통일했다.
그가 한국 근대 건축 답사를 시작한 것은 2003년 무렵이다. 일본의 문화주택(1930년대에 보급된 서양·일본 절충식 주택)이 한국에도 있는 게 신기해서 둘러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이곳(한국)에 살았던 일본 서민들의 생활에 관심이 있었죠.” 이후 등록문화재, 학교와 교회, 한국 전통이 일본이나 서양과 절충한 건축물로 점차 영역이 넓어졌다. 그는 “한국 여행 기사를 쓰는 동안에도 지방에 자주 가고 문화재도 다뤘다”면서 “관광 정보 사이트에서 대전의 철도 관사(官舍) 같은 곳을 소개한 것은 아마 내가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답사 기록을 소개하는 블로그도 운영한다. 국립현대미술관(옛 경성의전 부속 의원)처럼 유명한 건물부터 전국의 주택까지 망라한다. 일제시대에 지어진 주택에 수십 년씩 살고 있는 주인들의 배려로 집 안까지 둘러보거나 하룻밤 묵어 간 적도 있다고 한다. “오래된 집에는 그 집만의 역사와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집이 사라지기 전에 더 많이 듣고, 쓰고 싶어요.”
최근엔 서울보다는 지방을 자주 찾고 있다. 거문도의 일본식 여관, 부산의 폐광산처럼 한국인들도 별 관심을 두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한 시대의 흔적들을 찾아간다. 그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지방의 장소들을 더 발굴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