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잡기’와 ‘지속 가능성’. 요즘 기업들이 직면한 화두다. 재택근무에 익숙해진 직원들과 사무실 사이 원심력은 커졌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시대에 친환경은 경쟁력 가늠자가 됐다.
최근 서울 마곡 지구에 들어선 삼진제약 연구센터와 IT 기업 엑셈(EXEM) 사옥은 건축적으로 두 이슈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설계자는 마곡 ‘서울식물원’, 울릉도 ‘코스모스 리조트’, 서울 삼성동 KEB하나은행 ‘플레이스 원’ 등으로 한국 건축에 창의적 숨결을 불어넣어 온 건축가 김찬중(54·더시스템랩 대표) 소장. 두 건물을 찾아 그의 난제 풀이법을 살펴봤다.
◇‘멀티 페르소나’ 맞춰 유연한 공간
한 건물 건너 나란히 위치한 두 사옥의 외관은 확연히 다르다. 하얀 캉캉 치마를 연상시키는 입면의 삼진제약 연구센터는 발랄한 이미지, 네모난 엑셈은 단정한 느낌이다.
겉모습은 딴판이지만 공동의 맥이 있다. 건축가가 말하는 두 건물의 공통 키워드는 ‘심리적 지속 가능성’과 ‘환경적 지속 가능성’이다. ‘심리적 지속 가능성’은 김 소장이 만든 개념으로 “근무시간을 때우는 게 아니라 최적의 심리 상태로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직원이 건강해야 기업도 건강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관점에서 직원 대다수를 차지하는 MZ 세대의 특징인 ‘멀티 페르소나(여러 자아를 지님)’에 주목했다. 김 소장은 “이 세대는 수시로 나를 숨겼다가 드러내고 싶어 한다. 답은 공간의 유연성. 본인이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디자인을 지향했다”고 설명했다.
삼진제약 프로젝트의 열쇠는 서쪽 입면에 붙인 주름 형태의 두께 80mm 초고강도콘크리트(UHPC) 패널이다. 이 주름 안쪽에 해당하는 건물의 가장자리에 연구원들의 개인 책상을 뒀다. 조용히 혼자 일하고 싶을 땐 개인 책상에, 개방된 공간에서 일하고 싶을 땐 건물 중앙의 실험실로 가면 된다.
엑셈 사옥은 지상 8층 중 4~7층의 한가운데를 뻥 뚫어 거대한 보이드(void·빈 공간)를 만들었다. 여기에 상하좌우로 가로지르는 X자 계단을 설치하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형태의 휴게실도 뒀다. 마치 SF 영화 속 미래 도시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공간의 주인공이 계단이다. 사무 공간을 중앙, 동선을 가장자리에 배치하는 일반적인 사무실 배치 공식을 뒤집었다. “기존 폐쇄형 사무실과 실리콘밸리 스타일 개방형 사무실을 절충한 것”이라고 한다. 김 소장은 “탕비실에서 눈인사하고 빈백에 누워 얘기하는 실리콘밸리식 문화는 한국 직장인들에겐 불편하다. 이 사무실에선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료 모습이 자연스럽게 노출되며 풍경이 된다. 한국 정서에 맞게 시각적인 상호작용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외 발코니, 텃밭… 심리적 탈출구
김 소장은 지금까지 오피스 건물을 20여 개 설계하며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고층 통유리 건물에서 팔짱 끼고 도시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성공한 기업인의 이미지로 생각하더라. 그건 사장의 욕망일 뿐 현실은 변했다. 통유리 건물은 덥고 추우며 시대와도 맞지 않는다.”
그가 말한 ‘시대’는 사무 환경의 변화다. “종이로 서류 작업하던 시대엔 자연광이 풍부해야 했다. 모니터로 작업하는 시대엔 너무 강한 빛이 화면 보는 데 방해가 된다. 롤스크린으로 빛을 차단하고 실내등을 켠다. 전기료가 올라가고 뷰는 가려진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래서 고민한 화두가 ‘빛을 막으면서 도시와의 관계 열어주기’였다.
두 건물은 서향. 삼진제약 연구센터의 해법은 서쪽에 붙인 주름 모양 콘크리트 패널이다. 빛을 차단하면서 주름이 뜬 사이로 바깥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엑셈은 외벽에 특수 알루미늄 루버(차광판)를 붙여 오후에 서쪽으로 들어오는 강한 빛을 차단했다. 차광판과 유리벽 사이엔 발코니를 둬 직원들이 밖으로 나가 바깥 공기를 쐬게 했다.
실내 정원도 공통점이다. 삼진제약 연구센터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천천히 회전하는 높이 13m 스마트 팜이 시선을 뺏는다. 관상용이 아니라 여기서 재배된 채소를 연구원들이 따 먹는다. 엑셈은 4층에 오솔길처럼 실내 정원을 만들었다. 직원들을 위한 심리적 탈출구이자 습도 유지 장치다.
재택근무에 익숙한 직원들을 돌아오게 하는 사무실을 고민하는 회사들에 김 소장이 꺼낸 처방전은 명료했다. “집보다 좋아야 한다. 그냥 말고, 집이 주지 못하는 것을 확실히 주는 공간이 돼야 한다. 산책이든 카페든 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