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문자도(62×32.5cm). /현대화랑

의로울 의(義), 내뱉기 쉬우나 꽃 피우기 어려운 말.

열세 개의 검은 획, 그 위에 어느 무명씨(無名氏)는 꽃을 가득 채워넣었다. 문자도(文字圖)는 삼강오륜의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義)·염(廉)·치(恥) 여덟 자를, 교훈적 설화와 관련 깊은 잉어·용·대나무 등 전통적 도상과 함께 그리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꽃만 남았다. 장식 효과 때문이다. 이 그림은 여덟 폭 병풍의 일부로, 한때 운보 김기창이 소장한 작품이다.

‘義’를 반으로 나눠 좌측엔 국화, 우측엔 모란이 자리한다. 사군자 중 하나인 국화가 절개를 뜻하는 반면,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상반되는 두 의미가 하나의 글자를 구성하는 것이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문자도는 교훈성에서 점차 장식성으로 옮겨간다”며 “글자 안에 유가적 교리와 세속의 욕망이 혼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9세기 후반, 개화(開化)로 치닫던 당대의 개화(開花)를 보여준다.

다양한 문자도를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10월 31일까지 열린다. 특유의 민화적 요소로 가득한 과거의 재기가 현대를 비춘다. 온갖 곳에서 정의를 판촉하는 시대, 그림 속 ‘義’의 최상단이 익살스레 웃고 있는 눈썹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