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소홀 장편소설 '5번 레인' 표지. /문학동네

은소홀 글ㅣ노인경 그림ㅣ문학동네ㅣ240쪽ㅣ1만2500원

“시합은 이기려고 하는 거잖아요. 저는 이기고 싶어요.”

나이가 어리다고 1등을 하고 싶은 욕망이 적은 건 아니다. 때가 덜 묻었기에 내면 깊은 곳에서 순도 높은 질투를 일으킬 수 있다. 한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건, 커가는 몸처럼 마음도 자란다는 건, 남보다 앞서고 싶다는 본능을 조금이나마 바람직한 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는 것. ‘앞으로 몇 번이고 왕복해야 할 길이 보였다. 어떤 날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어떤 날은 영 지루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 나루가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들은 전부 물속에 있었다.’

/문학동네

열세 살 강나루는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메달을 척척 따는, 한강초 수영부의 에이스다. 여섯 살 때 언니를 따라 수영을 시작한 나루는 기록 0.1초를 줄이기 위해 학교 수영장을 100바퀴는 더 돌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폐활량을 늘리려 등굣길에 숨을 참는다. 그런데 코치님은 나루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가끔 한다. 이기고 지는 게 수영의 전부는 아니라니. “어떻게 지느냐가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해.” 나루가 알기로 그런 시합은 없다. “너 스스로 왜 수영을 하는지 천천히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은소홀 장편소설 '5번 레인'의 한 장면. 잠실 학생수영장에서 열린 대통령배 수영대회에서 라이벌 초희의 '승리의 부적' 수영복을 훔친 게 후회됐던 나루는 결승전 기권을 결심한다. 그러자 초희는 나루가 도망가면 자기도 안 하겠다면서 당당히 승부를 겨루자고 따진다. 결승 스타트대에 오르는 순간, 단단히 마음먹고 덤비는 초희를 향해 나루도 정면으로 부딪힌다. 그것이 예선에서 떨어진 선수들에 대한 예의이고, 8년 내내 수영만 보고 달려온 나루 자신에 대한 예의였다. /문학동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 우린 어른이 된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물살을 가르던 나루는 1등을 빼앗아간 친구의 수영복을 몰래 훔쳤다가 심연 속 일그러진 ‘나’를 맞닥뜨린다. 그리고 못난 ‘나’를 피해 물 밖으로 도망치지 않으려 애쓰는 과정에서 승부의 참의미를 깨닫는다. 그것은 8년 내내 수영만 보고 달려온 나루 자신에 대한 예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