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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마이크 브라운 지음|지웅배 옮김|롤러코스터|420쪽|2만원

‘태정태세문단세’ 처럼, 학창시절 많이도 외웠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이제 ‘명왕성’을 뜻하는 마지막 글자 ‘명’은 없다. 행성은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恒星) 주위를 도는 천체를 말한다. 1930년에 발견된 후로 76년간 태양계 아홉 번째 행성으로 이름을 올리던 명왕성은 2006년 열린 국제천문연맹(IAU) 회의에서 지위를 박탈당하고 ‘왜소 행성’으로 강등됐다. 저자는 태양계에서 명왕성을 축출한 사건의 주역으로 책에서 그 전말을 소상히 밝힌다.

초등학교 행성 수업에서 저자는 유독 명왕성이 달라 보였다. 다른 8개 행성들은 완벽한 원을 그리며 태양을 돌았지만, 명왕성만 삐딱 궤도를 탔다. 게다가 명왕성만 같은 궤도 평면상에 놓여 있지 않았다. 이후 천문학자가 된 그는 2005년 명왕성보다 더 큰 천체인 ‘제나(지금은 에리스)’를 발견한다.

그런데 그는 ‘열 번째 행성의 발견자’ ‘행성을 발견하고 살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란 영예를 포기하고 “명왕성과 제나를 행성으로 분류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천문학자들은 IAU 총회에서 ‘행성이 무엇인가’를 두고 논쟁했고,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충분한 자체 중량을 가진 구(球) 형태이며, 공전 궤도 안에 비슷한 다른 천체가 없어야 한다’는 것. 제나는 마지막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왜소 행성이 됐고, 자동적으로 명왕성도 같은 신세로 전락했다. 아내에게 전화로 “내가 방금 새 행성을 발견했어!”라 외쳤던 저자는 IAU 총회가 끝난 직후에도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명왕성은 이제 더 이상 행성이 아니야!”

학자의 양심과 세속의 욕망 사이에서 저자는 한 순간도 번민하지 않고 전자를 택한다. 명왕성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다른 차원의 위로가 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건, 우주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