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찬란한 어둠
김문정 지음|흐름출판|276쪽|1만5000원
오케스트라 피트를 취재한 적이 있다. 어둡고 긴 구덩이(pit)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공연을 앞둔 배우들이 워밍업할 때 무대 밖 연주자들도 악기를 튜닝하느라 바빴다. 급격한 온도 변화는 악기에 치명적이라 냉난방 설비도 없는 이곳을 김문정 음악감독은 ‘연주자들만의 우주’라 부른다.
지휘석은 피트 한복판 계단 위에 있다. 배우 땀방울까지 보이는 VVIP석. 시작은 늘 긴장된다. 심호흡하며 김문정은 “지휘봉으로 땅을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음악이라는 집을 짓겠다”고 다짐한다. 배우와 연주자, 스태프까지 눈동자 100개가 그녀의 손끝에 쏠린다. 구덩이 속에서 첫 음악이 깨어난다.
이 책은 건반 연주자부터 뮤지컬 음악감독까지 ‘김문정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피트를 중심으로 뮤지컬의 내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길잡이로 유용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잘 읽히는 에세이다. 황홀한 뮤지컬 무대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