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낸 책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이연실 대표. 그는 “편집자는 독자와 작가의 사이에 있는 사람으로서 스스로도 매력적이어야 하고, 동네방네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크리에이터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60만부 넘게 팔린 김난도 서울대 교수 에세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20만부 팔린 김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19쇄 찍은 히라노 게이치로 에세이 ‘책을 읽는 방법’….

모두 이연실(39) 이야기장수 대표의 손을 거쳐 독자들을 만났다. 그는 업계가 주목하는 ‘베스트셀러 제조기’이자 ‘스타 편집자’다. 지난 2일은 그가 2007년부터 몸담았던 문학동네에서 독립해 임프린트(대형 출판사의 하위 브랜드) ‘이야기장수’를 차린 지 꼭 1년째 되는 날.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의 한 카페에서 이연실을 만났다.

이연실은 ‘편집자는 저자를 돋보이게 하는 그림자일 뿐’이라는 오래된 불문율을 깼다. 그는 인스타그램 팔로어 8900명을 둔 ‘셀럽’이자 베스트셀러 ‘에세이 만드는 법’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판매에 대한 생각도 기존 편집자들과 다르다. 많은 편집자들이 ‘판매는 마케터의 일’이라 여기지만 이 대표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장사하자, 장사하자, 장사하자, 먹고살자”로 시작하는 하찌와 TJ의 노래 ‘장사하자’다. ‘이야기장수’라는 출판사 이름도 이야기 파는 상인(商人)과 이야기업계의 장수(將帥)라는 중의적 의미를 지녔다.

그 때문인지 지난 1년간의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우크라이나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의 ‘전쟁일기’로 시작해 이슬아 소설 ‘가녀장의 시대’ 등 모두 여섯 권을 냈는데 개정판 한 권을 빼고 모두 중쇄를 찍었다. 서점가에 쏟아지는 책들 중 중쇄를 찍는 책은 절반도 채 안 된다. 그중 ‘가녀장의 시대’는 출간 한 달도 안 돼 1만부 넘게 팔리며 드라마 판권 계약을 맺기도 했다.

연이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비결은 뭘까. 이연실은 “계약을 굉장히 까다롭게 한다”고 했다. “내 기대치보다 사람들은 책을 훨씬 덜 읽는다. 100% 확신을 갖고 해도 중쇄를 찍을까 말까다. 주변에서 ‘작작 좀 하라’고 면박을 줘도 내가 신이 나서 홍보할 수 있는 책을 만드니 에너지가 있는 책이 나오는 것 같다.”

출판계 주구매층인 30~40대 여성과 눈높이를 맞춘 것도 주효했다. 김훈 산문집 ‘연필로 쓰기’의 원래 제목안은 ‘저녁의 목마름’이었다. 이연실이 보기에 너무 무거웠다. 저자와 대화하던 중 아이디어를 얻어 출간 직전 제목을 바꿨고, 30~40대 여성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10만부 넘게 팔렸다. “’김훈 책이니까 이래야 해’가 아니라 ‘나는 이랬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했다. ‘천재 편집자’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시간을 많이 들인다. A3 크기 백지를 펼쳐놓고 제목안을 끝없이 적어가며 원고를 읽고 읽고 또 읽는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 쓸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담는 것이 편집자의 임무라는 것이 이연실의 믿음. “어떤 저자가 수년째 ‘이런 이야기를 꼭 쓰겠다’며 노래하고 다니는 책은 100% 계약한다. 그런 책은 반드시 잘되더라. 첫 책일수록 그 책을 자기의 ‘명함’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책은 하고 싶지 않다.”

“많이 팔린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지 않냐” 물었더니 이연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팔릴 것 같다고 해서 다 만들지는 않는다. 방송인들 책 제안이 많이 들어오지만 거절한 게 더 많다. 대중적 인기와 책이 되는 이야기는 다르다. 팬들이 많이 사더라도 3개월 만에 판매가 뚝 끊긴다. 그러면 재미가 없다.”

이연실은 “그렇지만 결국은 팔리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판매에 집착한다며 나를 싫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판매가 나쁘면 기운이 나지 않는다. 나와 저자, 같이 일하는 이들의 생계를 도모하려면 책이 팔려야 한다. 책 한 권이 계속 중쇄를 찍고 팔려나가는 짜릿함의 동력이 내겐 너무 크다. 꾸준히 베스트셀러를 내 온 것이 나의 가장 큰 힘이자 자부심이다. 이번에 이슬아 작가 책 드라마 판권 계약을 하면서 출판의 새로운 활로를 봤다. 앞으로는 영상으로 만들 콘텐츠를 찾아나선 ‘이야기 사냥꾼들’에게 책을 팔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