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세대

너새니얼 포퍼 지음|김지연 옮김|웅진지식하우스|472쪽|2만3000원

최근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한 20~30대 남성들에 대해 여러 해석이 쏟아졌던 것처럼 미국 사회에서도 ‘2030 남성을 어떻게 해독(解讀)할 것인가’는 중요한 과제다. 이들은 가부장제의 전통을 숭앙하지만 정작 자신은 가부장제의 이점을 누리지 못한다 주장하며, 여성을 소수자라 여기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진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수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블룸버그뉴스 에디터인 너새니얼 포퍼(46)는 지난해 미국서 출간한 이 책에서 남초(男超) 온라인 커뮤니티 분석을 토대로 2030 남성을 이해하려 시도한다. 그 중심에 미국판 디시인사이드인 레딧의 주식 게시판으로, 최근 회원 수 1800만 명을 넘어선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가 있다.

2021년 1월 월스트리트베츠에서 뭉친 개미 투자자들이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한 공매도 세력과 이른바 ‘맞짱’을 뜨겠다며 비디오게임 소매업체인 게임스톱 주식 등을 집중 매수해 주가 폭등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밈 주식(온라인에서 소문을 탄 주식)’인 게임스톱 주가는 그해 들어서만 20배 오르며 주식시장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접속 중인 남성. 저자는 "2030 남성들이 정체성 정치에 반발심이 들어 트럼프를 지지하는 '분노의 정치'에 빠져들었다"고 분석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저자는 이 ‘게임스톱 사태’를 2030 남성을 이해하기 위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든다. “전통적인 남성성의 특징인 공격성과 경쟁심보다 협력과 감성지능을 우선시하는 현대 사회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를 몰라 방황하던 젊은 남성”들이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뭉쳐 세를 과시하고 존재를 증명한 사례라는 것이다. 2016년 월스트리트베츠 이용자 실태 조사 결과 응답자 4000명 중 95% 이상이 자신을 남성이라 밝혔으며, 그중 90%는 30세 미만이었다.

월스트리트베츠는 2012년 30대 남성 제이미 로고진스키가 개설했고, 2016년 또 다른 30대 남성 조던 자자라가 운영진으로 합류하며 몸집을 키웠다. 트럼프 지지자 결집지이자 트롤링(trolling·관심을 끌려고 남을 조롱하는 온라인 문화)이 난무하는 곳으로 여겨지지만, 시작은 달랐다. 정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언어가 대세였으며, 정치적으로는 진보 성향에 가까웠다.

저자는 월스트리트베츠가 2015~2016년 사회에 대한 신뢰를 잃은 젊은 남성들에게 도피처가 되어주며 급성장했다고 본다. 21세기 들어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학업 성취도가 남성보다 높아졌고, 2015년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대학을 졸업할 확률뿐 아니라 좋은 직장에 취직할 확률도 훨씬 낮아졌다. 젊은 남성은 또래 여성보다 임금 수준이 낮은 일자리를 구하거나 아예 고용 시장을 이탈할 가능성도 높았다. 그 결과 부모와 함께 살며 비디오 게임이나 채팅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젊은 남성들이 많아졌다. 한 연구팀의 설문 결과 2015년 21~31세 남성의 유급 근로 시간이 10년 전에 비해 12% 감소했으며, 다른 인구 집단보다 훨씬 더 가파른 감소세를 보였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대신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급격히 늘어났다.

이처럼 달라진 세상에 등장한 새로운 부류의 청년들, 즉 시간은 남아돌고 사회에서 도태되었다는 자괴감에 빠진 젊은 남성들이 스스로를 ‘찐따’라 희화화하며 집결한 ‘허무주의의 공간’이 바로 월스트리트베츠였다.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 2030 남성 내면의 ‘난폭한 청년’들이 월스트리트베츠가 성장하며 트레이딩과 트롤링이 주된 활동이 되면서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YOLO, 즉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밈이 이 게시판을 지배했고, 주식 거래 앱 ‘로빈후드’의 등장과 함께 주식에서 얼마나 잃었는지를 인증하는 ‘손실 포르노’가 유행처럼 번졌다. 저자는 이를 “’세상이 불공평하게 돌아간다’는 절망감에서 비롯된 문화”라 해석한다. “수많은 주류 인사가 미국 내 흑인과 백인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에 관심을 보였지만, 실제로 몇몇 분야에서는 인종 간 격차보다 젊은 남성과 젊은 여성 간 격차가 더 컸음에도 이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려 애쓰는 2030 남성들 눈에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들을 대변할 유일한 사람처럼 보였다. PC주의의 영향으로 인종과 성별에 대한 건전한 비판마저 금기시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자, 2030 남성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좌파로부터 등을 돌렸다. ‘카리스마 넘치는 마초 영웅’ 일론 머스크가 이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이들은 머스크가 헤지펀드와 공매도 투자자들을 ‘세상물정 모르는 엘리트주의자’라 칭하며 분노를 표출하는 데 공감했다. ‘게임스톱 사태’는 이런 배경 아래 발발했다.

청년 남성들이 절망과 허무를 투자 행위를 통해 극복하려 했다고 본 저자의 관점은 우리 청년들을 이해하는 데도 하나의 기준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탄탄한 취재가 기반이 된 책으로 젊은 남성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도 저널리스트답게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도 미덕이다. 다만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본능’을 남성성의 특질로 규정한 것은 섣부른 일반화로 느껴진다. 원제 The Trolls of Wall Str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