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제도

다와다 요코 소설| 정수윤 옮김 | 364쪽 | 은행나무 | 1만8000원


설자은, 불꽃을 쫓다

정세랑 소설| 336쪽 | 문학동네 | 1만6800원


마법소녀 복직합니다

박서련 소설| 232쪽 | 창비 | 1만7000원

좋은 시리즈물은 ‘탄탄한 세계관’을 가졌다. 독자가 낯선 세계에 푹 빠져들게끔 해야 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세계가 닳아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쉬움을 느낄 정도로. ‘지금 문학은’ 특집으로 다와다 요코, 정세랑, 박서련 작가가 최근 펴낸 시리즈 소설 세 편을 추렸다. 모두 여성 작가가 쓴, 여성 캐릭터의 모험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1편이 아닌 후속작이라는 점도 시리즈물로서 신뢰를 더한다. 저마다 독특한 3인 3색의 세계다.

좋은 시리즈물은 차에 큰 짐을 싣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 같은 설렘을 준다. 낯선 세계를 누비며 평소에 누리지 못한 즐거움을 만끽할 때, 시야는 넓어진다. 알록달록한 지붕,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법사처럼 평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들이 만든 세계에 발을 내디뎌 보자. /일러스트=이철원

◇토론·고민·성찰로 가득한 모험

다와다 요코(65)는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장 유력한 일본 소설가로 꼽힌다.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한 그는 만 22세가 되던 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독일로 건너갔다. 이후 독일 베를린을 근거지로 활동하며 일본어와 독일어로 글을 쓴다. 이민 작가 중 드물게 이중 언어로 글을 쓰며 독일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올 초 번역·출간된 ‘태양제도’는 그의 삶의 궤적을 반영한 듯한 비범한 시리즈물. ‘지구에 아로새겨진’ ‘별에 어른거리는’을 잇는 ‘Hiruko 3부작’ 중 마지막 편이다. 언어와 국가의 구분이 흐려진 근미래가 배경이다. Hiruko와 친구들은 배를 타고 세계를 유랑하며, 새로운 탐험의 길을 열어 보인다. 제국주의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 이들의 모험은 끝없이 토론하고, 고민하고, 성찰하는 과정이다.

잡지 뉴요커는 “무국적 유랑자들과 언어의 발명가들이 펼치는 새로운 신화”라고 평했다. 정희수 은행나무 편집자는 “1편 격인 ‘지구에 아로새겨진’과 3편 ‘태양제도’가 이어지고, 2편 ‘별에 어른거리는’은 극장판 느낌이라 1-3-2편 순서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추천했다.

◇통일신라의 남장 여자 탐정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 ‘시선으로부터,’ 등으로 유명한 정세랑 작가는 시리즈물을 펴내고 있다. 680년대 통일신라 수도 금성을 배경으로 한 ‘설자은 시리즈’ 2편 ‘설자은, 불꽃을 쫓다’가 새해에 출간됐다. 앞서 1편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가 나왔고, 3편 ‘설자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 출간도 예정돼 있다. 주인공 설자은이 집사부 대사에 임명되면서 펼쳐지는 명랑 미스터리. ‘7세기 신라 탐정소설’이라고 보면 된다.

잿더미가 된 집 안에서 어린아이 둘을 포함한 시신 네 구가 발견된다. 이후 또 다른 화재로 시신 여섯 구가 발견된다. 저잣거리에서는 더러운 금성을 정화하기 위해 불귀신 지귀가 돌아온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다. 설자은은 화재 현장에서 맡은 독특한 기름 냄새를 단서 삼아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한 작가는 통일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을 구상하고 2016년 경주로 첫 조사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그만큼 오랜 기간 준비한 시리즈물. 정세랑 소설은 특유의 명랑함 속에서 묵직한 한 방을 날린다. 다만 ‘설자은 시리즈’는 묵직함은 덜어낸 듯하다. 라이트 노벨처럼 쉽고 빠르게 읽힌다.

◇카드 빚에 허덕이는 마법소녀

마법소녀가 돌아왔다. ‘마법소녀 복직합니다’는 2022년 출간된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의 후속 편이다. 반지하에 살면서 리볼빙(일부 결제 금액 이월 약정) 빚에 허덕이는 스물아홉 PC방 아르바이트생이 마법소녀라니, 얼마나 동시대적인가. ‘카카듀’ ‘퍼플젤리의 유통 기한’ ‘폐월; 초선전’ 등 지난해에만 단행본 수 편을 펴내며 다작 중인 박서련 작가가 지난해 10월에 낸 책이다.

다양한 능력을 지닌 마법소녀들이 범죄자를 소탕하고 재난 상황에 처한 시민을 구조하는 근미래의 대한민국. 전편에서 은퇴를 선언한 ‘나’는 전마협(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의 끈질긴 부탁에 복직을 결정하고, 마법소녀의 모험이 펼쳐진다.

청천벽력 같은 전세금 인상 소식에 갈 곳이 없어진 와중에도 어려운 이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그 자체만으로도 ‘수퍼 히어로의 자질을 갖췄네!’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편은 번역가 안톤 허의 번역으로 미 대형 출판사 ‘하퍼콜린스’의 자회사인 ‘하퍼비아’에서 출간됐다. 영미권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