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분

애니 제이콥슨 지음ㅣ강동혁 옮김ㅣ문학동네ㅣ488쪽ㅣ2만2000원

6분. 인류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이 ‘경보 즉시 발사 정책’에 따라 핵무기 종류와 타격 지점 선택을 끝내야 하는 시간이다. ‘경보 즉시 발사 정책’은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이 추진한 핵무기 전략으로, 핵 공격 신호가 관측되면 미국 대통령이 즉시 핵무기를 발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의 허락도 구하지 않는다.

책은 2016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미국 안보 전문 탐사 보도 기자가 미국 대통령 자문위원, 전 국방부 장관,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수백 건의 독점 인터뷰와 15년간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핵전쟁 시나리오’를 전개한다.

북한이 1메가톤 열핵탄두를 장착한 화성-17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워싱턴 DC를 향해 발사한다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위력은 히로시마 원폭의 약 60배다. 북한이 쏜 핵미사일은 24분 뒤 미국 본토에 떨어진다. 미국은 ‘경보 즉시 발사 정책’이 가동돼 6분 안에 반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고, 러시아는 미국이 자국을 겨냥한 것으로 오인해 1000기 이상의 핵미사일을 미국과 유럽에 떨어뜨린다. 한국에서는 북한 소형 로켓들에 탑재된 240톤의 사린 가스 공격으로 65만명에서 250만명이 사망한다.

미 본토를 타격하겠다는 북한의 선택이 미국의 즉각적인 반격을 만들어내며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되는 그림이다.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면 1시간도 안 돼 인류는 절멸이다. “설마 북한이 그런 비이성적인 선택을 할까.”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미국 열핵무기 설계자 리처드 가윈은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핵무기를 가진 허무주의적 광인 한 명만 있으면 승자 없는 핵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쏘고 미국이 반격에 나서고, 러시아가 핵 버튼을 누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43분이다. 30만 년 인류사의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기엔 너무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