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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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랑

안 헤벨라인 지음 | 이한진 옮김 | 마르코폴로 | 304쪽 | 2만원

우리는 독일 출신 유대계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표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본 아렌트가 ‘악(惡)의 평범성’이라는,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화두를 던졌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 한 관료의 ‘순전한 무사유’가 어떤 파국을 낳을 수 있는지 널리 알렸다.

이렇게 외우다시피 아렌트를 아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사랑 또한 아렌트의 삶과 철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서다. 아렌트는 “왜 우리가 세상을 사랑해야 하며, 그것이 왜 어려운지에 대해 숙고”했다. 홀로코스트 이후에도 그녀는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애썼다. 아렌트는 이를 ‘세계에 대한 사랑(amor mundi)’으로 개념화한다. 스웨덴 학자 겸 작가가 쓴 이 책은 ‘사랑’을 키워드로 한 독특한 아렌트 전기다.

아렌트의 사랑은 책임·반성·판단과 연결된다.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성찰과 그 결과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부재는 곧 무관심이며, 무관심은 악이 싹트는 토양이 된다.

1950년 그녀는 스승이자 한때 열렬한 연인이었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와 재회한다. 이후 평생 다정한 관계로 남았다. 나치에 복무한 하이데거의 전력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 “사랑만이 용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불가능해 보이는 화해와 용서가 가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아렌트의 용서는 미래 지향적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