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리뷰’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계간 문예지일 텐데, 이름과 달리 본사는 미국 뉴욕에 있고, 영어로 출간된다. 이 잡지는 특히 작가 인터뷰로 이름 높은데, 풀네임을 다 적지 않아도 되는 문호(文豪)급 소설가 수백 명의 목소리를 실었다. 헤밍웨이, 포크너, 나보코프, 보르헤스, 하루키 등등. 인터뷰어로 나선 이들도 대부분 소설가라서, 문학계 선후배의 노하우 공유 자리를 엿보는 분위기다. 인터뷰 중 36편이 한국에서 ‘작가란 무엇인가’(다른) 1, 2, 3권으로 출간됐고, 이걸 다 합친 1504쪽짜리 합본판도 나왔다.

소설가, 예비 소설가, 문학 독자들은 이미 많은 분이 읽었거나 언젠가 읽을 책으로 꼽아놨으리라 짐작한다. 나는 비문학 독자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인터뷰 대상이 되는 소설가들의 작품을 한 편도 읽지 못했더라도 상관없다. 이 책을 통해 문학의 매력에 빠져보라는 권유가 아니다. 한 업계의 세계적인 장인들을 이만큼 모은 인터뷰집도, 그들에게 일의 정수를 이렇게 치열하게 캐물어 답변을 들은 보고서도 달리 못 봤기 때문이다.

일종의 인류학 보고서라고 여기고 이 책을 펼치면 어떤 점들이 보이나? 일단 거장들은 자기 일에 대해 모르는 게 많으며,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이 몸담은 업계가 그토록 크고 깊다는 데 경외심을 품는 듯하다. 거장들은 그들이 아는 것조차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데,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다. 그들의 노하우는 암묵지이고,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오랜 수련이 필요하다.

그때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자세다. 자신을 갈고닦는 과정에서 그들은 거의 영적인 체험도 한다. 헤밍웨이는 매일 글쓰기를 마칠 때 ‘텅 빈 것 같으면서도 가득 찬 듯한 느낌’을 맛봤다. 레이먼드 카버는 ‘대성당’을 쓰면서 ‘이게 내 삶의 목적이야, 이것이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야’라고 느꼈다. 설령 소설은 읽지 않더라도 탁월함을 추구하는 행위와 마음가짐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관심 있는 독자라면 틀림없이 얻어가는 바가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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