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우정은 첫사랑이다
릴리 댄시거 지음|송섬별 옮김|문학동네|292쪽|1만7500원
2000년대 초반 미국 십 대 소녀들의 우정은 촉촉하다 못해 축축하다. 브리트니, 셜리, 헤일리, 헤더, 리아, 리즈…. 실비아 플라스나 아나이스 닌 같은 여성 작가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우정의 증표로 편지를 주고받는 소녀들이 대거 등장한다. 한국식으로 바꿔 말하면 전혜린에 이입하는 센티한 소녀들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다소 건조한 독자들에게는 사춘기 시절부터 이어 온 여자들의 우정과 사랑, 그 사이 미묘한 줄타기 등이 감정 과잉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돌봄’에 관한 논의로 확장하며 독자를 붙든다. 여자들의 우정은 곧 “서로에게 엄마 되기”다. “누구에 관해 신경 쓰는(care about) 것을 넘어, 그 사람을 위하고(care for), 돌보는(take care of) 일”이란 것. 이는 “정서적 쉼터를 내어주는 일” “세상에 혼자가 된 기분이 들지 않을 만큼 사랑을 쏟아붓는 일”이다.
장르가 독특하다. 이 책은 ‘살인 사건 회고록’이자 저자가 “여섯 살 때 처음으로 러브레터를 보냈”던 어찌 보면 첫사랑이나 다를 바 없는 사촌 사비나에게 바치는 애도 일기다. 한 사람이 겪은 우정의 연대기를 다룬 에세이면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의 고백이다. 여성의 우정에 대한 문화적 통념을 비틀고, 외연을 확장하려는 일종의 문화 비평으로도 읽힌다.
저자 릴리 댄시거는 뉴욕에 사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다. ‘뉴욕타임스’ ‘애틀랜틱’ ‘워싱턴포스트’ ‘플레이보이’ ‘엘르’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며 대학에서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친다. 원제는 ‘First Love’. 직역하면 ‘첫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