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실
한강 지음|문학과지성사|172쪽|1만5000원
한강 작가는 자신과 똑 닮은 집에 사는 듯하다. ‘온화한 공기의 감각’이 느껴지는 마당 있는 작은 집. 그곳에서 북향 정원을 일구며 꾸준히 일기를 썼다. 책에 실린 산문 ‘북향 정원’과 ‘정원 일기’가 그 기록이다.
작가는 남쪽으로 드는 빛을 거울로 붙잡아 북향 정원에 비춘다. 모든 나무에 고루 빛을 쬐어주기 위해 15분마다 거울을 옮긴다. 그렇게 지구의 자전 속도를 익힌다. 지구의 공전 속도도 배운다. 계절에 따라 햇빛의 각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거울의 배치를 며칠에 한 번씩 바꿔줘야 한다. 작가는 빛을 받는 연둣빛 잎사귀를 보며 ‘근원적인 기쁨’을 느낀다.
이 단정한 산문은 앞으로 만날 한강 작품의 향방을 가늠하게 한다. 그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이후 이렇게 썼다. ‘생명을 말하는 것들을, 생명을 가진 동안 써야 하는 것 아닐까? 허락된다면 다음 소설은 이 마음에서 출발하고 싶다.’ 이는 그가 작년 노벨문학상 시상식 연설에서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다.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말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자신만의 세계에 고요히 머무르지만, 이따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내 작은 집의 풍경에는 바깥 세계가 없다. 중정이 주는 평화. 내면의 풍경 같은 마당. (…) 하지만 이 내향적인 집에도 외부로 열려 있는 방향이 있다. 마당의 하늘. 그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오래 보고 있었다.'
책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빛과 실’)과 시상식 연설문(‘가장 어두운 밤에도’) 전문, 한강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 등도 수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