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구현하고자 하는 음악은 존 레넌의 ‘이매진’처럼 평화와 공존이 주제입니다. 저는 누구 편도 아닌 노래의 편입니다.”
23일 밤 3개월 대장정의 막을 내린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의 주인공이 된 박창근(49)은 “이렇게 큰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을 만날 수 있어 고마웠다”면서 “톱7 후배들을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함을 배운다. 보답하는 마음으로 평생 노래하겠다”고 했다.
톱7이 각자 ‘인생곡’을 내걸고 겨룬 최종전에서 박창근은 실시간 문자 투표 1위에 힘입어 국민가수 자리에 올랐다. 최종전 점수 산정 방식은 지난 3주간의 국민 응원 투표(VOD 조회 수 포함) 200점(5%), 관객 점수 300점(7.5%), 마스터 총점 1100점 (27.5%), 실시간 문자 투표 2400점(60%)으로 총 4000점 만점. 실시간 문자 투표를 제외한 중간 점수까지 4위였던 박창근은 실시간 문자 투표에서 1등으로 2400점을 추가하며 단숨에 역전했다. 상금 3억원과 황금 트로피, 그리고 왕관을 썼다.
박창근이 선택한 이날 인생곡은 자작곡 ‘엄마’. 지난 2015년 발표한 4집 정규 음반 ‘바람의 기억’에 들어있는 노래다. “최종전에서 대중이 바라는 건 어쩌면 더 격정적이고, 더 폭발적인 모습이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자존심 하나로 버티며 이 나이 먹도록 해왔던 내 음악, 그리고 내 선택을 도와준 엄마와 또 많은 분께 죄송하고도 고마운 마음으로 선택한 곡입니다.”
상금 3억원도 쓸 곳을 정했다. “서울 화곡동 13평짜리 집을 구할 때 어쩔 수 없이 손 벌린 저에게 엄마는 ‘동생한테는 얘기하지 말그래이’라며 평생 모은 돈을 빌려주셨다”면서 “어머니한테 진 빚도 갚고 그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7일 첫 방송 말미에 등장해 “23년간 노래라는 길을 꾸준히 묵묵히 걸어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이제 좀 용기를 내서 좀 더 많은 사람 앞에서 이렇게 노래해온 사람도 있다는 걸 한번 보여드리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어린 시절 이선희, 조용필, 산울림 노래를 즐겨 불렀다던 그는 김민기·김광석이 대중과 만나고 아우르는 과정을 닮고 싶어 했다고 했다.
비록 ‘무명부’라는 타이틀에 속해 처음 등장했지만, 음악계에서는 누구보다 김광석 노래를 잘 부른다고 알려진 그다. 1999년 정식 데뷔해 2012년부터 3년간 김광석 소극장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주연을 맡았고, 대구에서 열린 ‘김광석 노래 다시 부르기 대회’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김광석처럼 대구 출신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 학내 집회에 참가하고 노래패 활동도 했지만 ‘이념’의 틀에 갇혀가는 것 같아 홀로 기타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고 했다. 결식 아동 돕기, 노숙자 돕기 같은 일을 해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 등 각종 진보 진영 집회에 참가한 그의 과거 이력이 알려지면서 정치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TV조선이 주최하는 경연에 이런 이력을 지닌 가수가 참가하는 것이 이율배반적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를 민중 가수라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대학생(대구대) 때, 저는 선배들과도 많이 다퉜습니다. 의식화된 민중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에 고픈 사람들도 다 민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전 사실 그동안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어요. 집회 현장에서 부르는 투쟁 가요를 싫어했거든요.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건 좋지만 싸워서 뒤엎고 죽이자, 이런 건 제가 용납이 안 됐어요. 굳이 말하자면 저는 민중이 아니라 대중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는 시간이 갈수록 솔직해졌다. “생존이란 문제가 눈앞에 있는데, ‘음악 한다고 후배들한테 큰소리치고 남들 앞에 떳떳할 수 있겠느냐’는 고민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죠. 저와 같이 환경 보호를 이야기하는데, 파급효과가 비교가 안 되는 이효리씨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힘 있는 매체를 통해 내가 만약 유명해지면, 제 메시지가 더 제대로 전해질 수 있겠지요? 저를 국민들과 만나게 해 주신 ‘내일은 국민가수’에도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