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MBC 뉴스데스크가 보도한 '당근칼에 빠진 초등학생들‥장난감 칼에 부상 늘어'라는 제목의 리포트. 인터뷰에 나온 남자 초등학생이 "여자애들도 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에, "여자애들 패요"라는 자막이 달려 보도됐다. /MBC

‘당근칼’의 위험성을 보도하며 남자 초등학생의 실제 발언과 다른 자막을 내보냈다가 ‘남녀 편가르기’ 논란을 빚은 MBC 보도와 관련, 해당 리포트를 보도한 기자가 “여러 번 들었으나 잘못 인식한 것 같다”며 사과글을 올렸다.

23일 MBC경남 A 기자는 자기 유튜브 채널을 통해 “논란이 된 인터뷰 내용과 관련해 내부 논의와 여러 차례 확인 절차를 거쳐 정정 보도가 나갔다”며 “원본 음성은 보도에 나간 음성 변조된 음성보다 강한 발음이 들린다. 그렇다 보니 현장에서 직접 이야기를 들을 때도, 편집할 때도 여러 번 들었으나 잘못 인식한 것 같다”고 했다.

A 기자는 “시청자분들께서 지적해 주신 덕분에, 내부 선배들께서 귀를 모아 여러 차례 다시 들어보고 바로잡을 수 있었다”며 “제 불찰로 마음이 불편하셨을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A 기자는 “아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했다는 일부 의견에 대해서는 전혀 그럴 생각도 없었고, 그렇게 비치길 의도하지 않았음을 말씀드린다”며 “남녀 갈등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나 생각도 없었다. 참고로 한 쪽 성별이나 혐오를 지지하는 등의 커뮤니티 활동도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A 기자는 “아이들의 안전과 올바른 교육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 취재가 도리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기사가 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다”며 “회사 내에서 있을 징계나 조치 등은 달게 받겠다”고 했다.

MBC는 21일 메인 뉴스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에서 최근 초등학교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소위 ‘당근칼’의 위험성을 짚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당근칼은 당근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칼인데, 해당 리포트는 이 당근칼이 “수박은 물론 파인애플 껍질도 뚫는” 파괴력이 있다면서, 이에 대한 교육당국의 지도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문제는 인터뷰에 응한 한 남자 초등학생이 실제로 한 발언과는 다른 자막을 달았다는 것이다. 현재는 삭제된 해당 리포트를 보면, A 기자는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한 학생은 대뜸 가방에서 당근칼 3개 나 꺼내 보여줍니다”라며 그와 짧은 질문을 주고받는다.

A 기자가 ‘당근칼 다 써봤어요?’라고 묻자 학생은 “네, 제가 씁니다. 보여 드릴까요? 이거는 두 개로, 쌍으로 돼 있는 거예요”라고 답한다. A 기자는 ‘어떻게 가지고 놀아요?’라고 다시 물었고, 초등학생은 당근칼 사용법을 기자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해 가지고 찌를 수 있어요. 여자애들도 해요.”

그러나 초등학생의 실제 육성과는 다른 자막이 붙었다.

“여자애들 패요.”

보도 직후에는, 여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인터뷰에 나온 초등학생을 향한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다. MBC가 단 자막대로 초등학생이 실제로 “여자애들 패요”라고 말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MBC가 단 자막이 이상하다’는 반응도 동시에 나왔다. 특히 리포트 영상 배속을 느리게 하면, 더 분명하게 “여자애들도 해요”라고 들린다는 것이다. ‘자막 오류’라는 의견이 금세 온라인 커뮤니티의 중론이 됐고, 비난은 해당 리포트를 작성한 A 기자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리포트를 쓴 기자가 ‘여자’라는 점을 언급하며 ‘남성 혐오를 조장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그 같은 자막을 달았다’고 주장했다.

MBC는 논란이 일자 처음에는 원본 리포트를 삭제하는 조치만 했다. 문제가 된 인터뷰 부분만 삭제한 리포트 수정본을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올렸다가, 22일 오후가 돼서야 사과 방송을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