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민 서울대 교수와 배진아 공주대 교수는 5개월 동안 조선일보 편집국에 머물며 기자와 데스크들의 신문 제작 과정을 관찰했다. 정글의 야생 부족을 찾아간 인류학도처럼 조선일보에 섞여 들어 신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폈다.
두 사람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신문 제작에 대해 ‘시시포스적 헌신’ ‘지독한 반복’이라고 표현했다.
-신문 제작을 신화 속 인물에 비유했다.
윤석민(이하 윤): “문화 충격을 받았다. 몸을 갈아 넣는 노동, 편집 과정을 통해 사실(fact)들이 보다 정밀해지고, 표현이 명확해지고, 설명이 강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언론인은 결국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외부자일 수밖에 없는 전문 연구자로선 알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된 것이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성과다.”
배진아(이하 배): “최종 인쇄가 끝날 때까지 밤마다 기사 내용을 수정 업데이트하고, 제목을 개선하는 것을 보면 ‘바꾸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 같았다. 그런데 그걸 다음 날 또 반복한다. 내가 본 신문 제작은 이런 무한 노동이었다.”
-신문 제작 과정을 직접 보는 것이 편집국 ‘참여 관찰’ 연구의 목적이었나.
윤: “아니다. 처음엔 신문의 논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한국 언론은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기자들이 기사를 취사 선택해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고, 편집국은 편향의 생산 공장 취급을 받는다. 우리는 편집국이라는 그 ‘블랙박스’의 속을 보고 싶었다.”
-그런 연구 의도를 이야기했나.
윤: “조선일보가 정파적이라고 비판받는데, 진짜 그런지, 그런 정파성의 원인은 무엇인지도 연구해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도 문을 열어준 것을 보면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웃음).”
-왜 조선일보였나.
배: “조선일보가 아닌 다른 일간지 두 곳에도 똑같이 요청했다. 문을 열어준 곳은 조선일보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널리즘 연구이면서 조선일보 저널리즘 연구가 됐다.”
-참여 관찰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배: “밀착 관찰을 하면서 데스크들 농담 주고받는 것까지 채록했다. 메모를 보니, ‘A 차장은 어제와 같은 옷, 혹시 집에 안 들어갔나’ 이런 것까지 적었다.”
-그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아야 하나.
윤: “기자들끼리 작당하고 서로 동조화되면서 편향성이 만들어지는 것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
-책에는 “언론에 대한 편향성 인식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썼다.
윤: “연구를 통해 그동안 제기되어 온 언론 편향성에 대한 지적이 인상 비평이란 걸 확인했다. 편집국에 들어와 사실에 사실을 쌓는 과정, 끊임없이 상의하면서 뉴스거리를 결정하고 제목을 고치는 것을 직접 봤다. ‘사실에 기반한 의견’을 편향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학계 일부의 이른바 언론 개혁론 입장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윤: “학계 일부는 언론이 따를 수 없는 추상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그렇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마차가 말을 끌 수는 없다.”
-학계에선 어떤 평가를 받을까.
배: “관찰 기간 중 틈날 때마다 조선일보 지면을 다운받았다. 118일 치 초판부터 최종판까지 1만1729면을 수집했다. 이 중 지면 659면(초판 기준), 기사 1807건을 대상으로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추적했다. 기사 추가·수정·삭제 여부, 제목·그래픽·사진 변화 등 수십 항목을 일일이 코딩 분석해 언론학보에 냈다. 그 전에는 없던 연구여서 큰 관심을 받았다. 리뷰어들이 궁금해해서 후속 연구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책에 방법론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런 관심은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 “신문사 내부 종사자들만 접근할 수 있는 판별 모니터링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대학원생도 아닌 중진 연구자들이 밀착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 같다.
배: “촌각을 다투며 이뤄지는 지독한 반복은 옆에서 지켜보며 기록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윤: “배 교수님은 편집국에서 밀착 관찰을 하다가 육체적으로 힘들어 밤중에 토한 적도 있다.”
-기자들이 방해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배: “라포르(rapport·신뢰 관계)가 형성되는 데 두 달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나중엔 우리를 투명 인간처럼 여겼다.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저널리즘 연구 1권은 관찰 연구 결과물이고, 2권은 실명(實名) 대담 인터뷰다.
배: “원래 인터뷰를 한 이유는 현장 관찰과 섞어서 녹여 내기 위한 것이었다. 외부자인 우리가 현장에서 본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인터뷰로 보완했다. 그렇게 하고도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2권을 제작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연구자의 언어로 해석해서 담는 것보다 생생한 목소리 그대로 살려서 전달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 대담 형식을 택했다.”
-이번 참여 관찰 연구의 성과는.
배: “뉴스가 매체나 형식이 달라도 생산 과정에서 지켜야 할 가치,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그것은 ‘사실성’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 있는 저널리즘’의 실체를 확인했다. 그것을 대체할 보다 나은 대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가 지켜본 언론 현장은 그 가치 있는 언론을 지키기 위한 헌신적 노력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자들은 희망을 보았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이제 사회가 언론을 지켜야 한다’고 했는데.
배: “현실에선 굉장히 쉽게 뉴스가 생산되고 제대로 만들어진 뉴스가 외면받기도 한다. 이런 뉴스 생산 방식이 지속될 수 있을까, 신문사들이 좀 더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을 찾아 이런 뉴스 생산 방식을 포기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의미에서 사회가 이제 언론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윤: “가치 있는 언론이 투입하는 노력에 상응하는 사회적 주목과 시장 성과를 점점 거두지 못하고 있다. 기자들이 애써서 양질의 기사를 써도 많은 사람이 보지 않는 데서 오는 좌절감이라든가 직업적 보상의 약화 등을 지적한 것이다. 점점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들이 주목받는 시대로 가니까. 정말 이런 딜레마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