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백년식당’ 촬영으로 대구에 있는 60년 넘은 노포에서 하루 꼬박 일한 적이 있다.
2대째 대를 이어온 나이 지긋하신 사장님은 두 커다란 국솥 가운데 자리를 잡고, 손님이 들어오는 대로 왼쪽 솥의 따듯한 탕을 그릇에 담고 기다렸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조금 더 끓고 있는 오른쪽 국솥에 다시 부어 휘휘 저은 후 그걸 다시 퍼서 손님상에 내보냈다. 과거 아궁이에 불을 때 밥을 지을 때는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에게 따뜻한 밥을 내주는 건 쉽지 않았다. 미리 지어둔 찬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밥을 따뜻하게 만들어 손님에게 내는 방법이 바로 ‘토렴’이다.
왜 뚝배기에 팔팔 끓이지 않고 토렴으로 데워 내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어르신이나 아이는 뜨거워 입천장을 델 수 있고, 끓는 탕에 밥을 말면 전분이 너무 풀려 정성껏 낸 탕 맛을 버릴 수 있다고 했다. 당연하지 않으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어르신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뜨겁고 무거운 탕 그릇을 한 손으로 수백번씩 옮겨 대는 왼 손목엔 압박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점심시간, 식당인지 전쟁터인지 구별이 안 갈 만큼 사람이 몰리고 바쁜 상황이었다. 주문한 탕이 나오자 외투를 벗고 한 술이나 떴을까? 손님 중 한 명이 전화를 받으러 시끄러운 가게를 잠시 나갔고, 어르신은 이내 새 그릇에 토렴을 위한 탕을 담았다. 다시 돌아오는데 채 몇 분이나 걸렸을까? 들어온 손님에게 어르신은 ‘새로 줄 테니 그것 먹지 말고 기다리시게’라는 말을 하곤 탕 한 그릇을 더 냈다. 고작 몇 분 차이인데 한 그릇을 버릴 이유가 있느냐고 물은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식은 밥 먹고 힘 못 써. 저건 내가 주고 싶은 따끈한 한 끼가 아니야’였다.
어릴 적 ‘밥 먹어라’ 하고 식탁에서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들이 그랬을까. 망치로 맞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토렴’ 이란 단어는 잊어서는 안 될 마음가짐이다. 펄펄 끓지도 너무 식지도 않은, 알맞게 뜨끈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