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빈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

우리는 소화가 안 될 때 소화제, 두통이 있다면 두통약을 복용한다. 이런 약들은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고 부작용이 거의 없어 일반 성인이라면 별다른 걱정 없이 복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임신부라면 신중할 수밖에 없다. 임신인 줄 모르고 복용한 경우에는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특히 계획 임신이 아닌 경우 임신 초기 임신 사실을 모르고 약을 먹었다가 고민에 빠지는 임신부가 많다. 우리나라의 계획 임신율은 50%를 넘지 않아 임신 중 임신부의 약물 노출 빈도가 약 10회 이상이란 보고도 있다. 어떤 약은 괜찮고 어떤 약은 피해야 할까.

◇임신 때 꼭 피해야 할 약물

선천성 기형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성분이 들어간 약은 꼭 피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여드름약(이소트레티노인), 혈압약 중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억제제,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 항경련제, 항암제 등이 있다. 조울증 치료제로 먹는 리튬 성분도 기형을 유발할 수 있다. 술(알코올)과 담배처럼 위험한 기형 유발 물질이 약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약을 모르고 먹었다면 어떨까. 오히려 임신 초기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같은 약물에 노출됐더라도 기형 위험도가 낮다는 뜻이다. 임신 4주 이전(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후 2주가 되기 전)을 의사들은 ‘보상 혹은 유산 시기’(all or none period)라고 부른다. 임신이 되거나 유산이 일어나는 시기라는 뜻이다. 이 시기에 위험 약물을 섭취했을 경우 손상이 크면 유산이 일어난다. 유산이 될 정도로 손상이 크지 않으면 회복돼 임신이 이뤄진다. 이 시기에 기형 발생률이 떨어지는 이유다.

감기약·소화제·두통약 등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 약물은 임신 중 태아 기형 위험을 높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부 일반의약품은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전문가는 약 복용 전에 전문의와 상의하거나 마더세이프 콜센터(1588-7309)를 통해 무료 상담을 받기를 권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임신 후 아주 초반보단 태아 장기가 형성되는 배아기(임신 4~10주)에 섭취한 약물이 치명적일 수 있다. 이 시기에 태아 기형을 유발하는 약제에 노출됐다면 주요(major) 기형을 일으킬 수 있다고 의학계는 보고 있다. 임신 10주 이후부터 출산까지를 뜻하는 태아기엔 태아 기형을 일으키는 약제에 노출이 된다면 기능적 결함, 소(minor) 기형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약에 따라선 조산, 태아 성장 제한, 양수과소증으로 연결될 수 있다. 임신 후 위험할 수 있는 약을 먹었다면 그 시점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두통약⋅소화제는 안전할까?

임신 중 기형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약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약물은 선천성 기형 발생률이 ‘기본 위험률’(1~3%)을 넘지 않는다. 소화제⋅감기약⋅두통약 등의 일반 의약품은 이 기본 위험률을 보통 넘지 않는다. 다만 몇몇 약품은 피해야 한다. 가벼운 두통·열·통증이 있을 때 먹는 소염 진통제 중 이부프로펜이 주성분인 약(애드빌, 부루펜 등)은 임신 20주 이후에 태아의 신장 기능 장애와 양수과소증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약은 30주 이후에선 태아 동맥관의 조기 폐쇄 위험을 일으킨다는 보고도 있다. 임신 중엔 복용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임신 중엔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이 주성분인 소염 진통제로 바꿔 먹으면 된다.

임신 중 속이 더부룩해 소화제를 찾는 임신부도 있다. 대부분 소화제는 문제가 없지만 미소프로스톨 성분이 들어있는 약은 피해야 한다. 이 성분은 자궁 수축 작용이 있어 분만 유도, 낙태 등의 용도로도 쓰이는 약물이다.

◇‘마더세이프상담센터’에 문의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 약물은 임신 중 태아 기형의 위험도를 높이지 않는다. 섣부른 걱정과 판단은 금물이다. 정확한 약물 사용에 대한 전문가와의 상담은 걱정을 덜어주고 불필요한 임신 중절을 방지할 수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와 상담하거나 보건복지부가 지원하는 한국마더세이프 전문상담센터(1588-7309)를 이용하면 좋다. 이 센터는 평일 오전 9시~오후 5시 전화와 인터넷으로 상담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