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국보 1호 숭례문’이 ‘국보 숭례문’으로 바뀐다.
문화재청은 “국보·보물·사적 등 문화재 앞에 붙는 번호가 문화재를 서열화한다는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지정 번호를 없애고 내부 관리용으로만 운영하겠다”고 8일 밝혔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시행과 함께 시작된 문화재 지정 번호 체계가 60년 만에 전면 개편되는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은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해온 ‘국보 1호 교체’ 주장에서 비롯됐다. “국보 1호는 우리 문화재의 상징인데 숭례문으로는 약하니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문화재의 지정 번호는 가치 서열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정된 시간 순서에 따른 번호일 뿐”이라고 반박해왔다. ‘국보 1호’를 금메달이라고 오해하기 때문에 이런 논란이 반복된다는 것. 현재 국보는 334호, 보물은 2110호까지 지정됐다.
숭례문과 국보 1호의 인연은 8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4년 일제가 조선의 보물을 지정하면서 숭례문에 보물 1호를 부여했다. 일제가 숭례문의 가치를 평가했던 것이라기보다 편의상 1호를 붙인 것이라고 알려져 왔다. 해방 후 우리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쳐 1962년 시행된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숭례문은 국보 1호가 됐다.
1996년 국보 1호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처음 나왔고, 2005년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국보 1호는 훈민정음이 적합하다”고 발언하면서 또다시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 뒤 숭례문이 화재로 불탔을 때도, 숭례문 부실 복원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잊을 만하면 누군가가 ‘1호 교체’를 들고나왔다.
이제 문화재청이 지정 번호를 없애기로 결정하면서 해묵은 논란도 종지부를 찍게 됐다. 전문가들은 “지정 문화재에 번호를 매기는 나라는 우리와 북한뿐”이라며 “일본도 국보 번호는 정부의 관리용 번호일 뿐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앞으로 공문서·누리집 등에서 지정 번호를 쓰지 않고, 교과서·도로표지판·문화재 안내판 등에도 사용 중지를 추진할 방침”이라며 “기존 지정 번호는 문화재 관리용(내부 행정용)으로만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