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놓고 경쟁하는 ‘윤여정의 라이벌들’은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들이다. 25일(현지 시각) 열리는 시상식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부문 가운데 하나도 여우조연상. 뉴욕타임스마저 “다른 연기 부문은 매듭이 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우조연상 경쟁은 여전히 흥미롭고 혼란스럽다”고 평했다.
배우 윤여정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스트레스가 많다(It’s very stressful). 사람들이 이제 나를 축구선수나 올림픽 국가대표처럼 생각하는데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어쩌면 그의 푸념은 연기 분야의 ‘국가 대표’들과 겨뤄야 하는 심적 부담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여우조연 후보의 이번 작품 캐릭터들을 ‘악녀’ ‘효녀’ ‘미녀’로 나눠 비교했다.
1)악녀: 글렌 클로스
영화 ‘힐빌리의 노래’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글렌 클로스는 할리우드의 대표적 악역으로 손꼽히는 배우. 이번 영화에서도 담배를 물고서 욕설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도 손자가 엇나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강인한 할머니 역을 열연했다. 같은 할머니 역으로 한국의 윤여정과 경쟁하는 셈이다.
클로스는 한국 첫 직배 영화였던 ‘위험한 정사’(1987), ‘위험한 관계’(1988)와 ’101 달마시안'(1996) 등 악역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위험한 정사’ 국내 개봉 당시에는 직배 반대 운동에 나선 한국 영화인들이 상영관 점거에 나서고 객석에 뱀을 담은 자루를 풀어놓기도 했다.
클로스는 토니상과 골든글로브 등은 수상했지만 정작 아카데미는 7차례 후보에 오르고도 아직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 때문에 ‘아카데미 수상 경력이 없는 여배우 가운데 최다 후보 지명자’라는 달갑지 않은 기록도 갖고 있다. 만약 올해도 여우조연상을 놓치면, 8차례 후보에 오르고도 수상하지 못한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피터 오툴과 함께 최다 타이 기록을 갖게 된다.
2)효녀: 올리비아 콜먼
클로스와는 반대로 콜먼은 무척 상복이 많은 배우다. 2년 전 ‘더 페이버릿’에서 앤 여왕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먼저 받았다. 아카데미 수상자가 다시 여우조연상을 받은 경우는 지금까지 네 차례에 불과했다. 콜먼은 영국 왕실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도 엘리자베스 2세 역을 맡았다. 이렇게 보면 여왕 전문 배우 같지만, 정작 콜먼의 출세작이었던 영국 드라마 ‘브로드처치’에서는 영국 해안가 마을의 시골 경찰 역이었다.
이번 아카데미 후보작인 ‘더 파더’에서는 알츠하이머로 투병하는 아버지(앤서니 홉킨스)를 정성스럽게 돌보는 딸 앤 역을 맡았다. 여왕부터 경찰과 효녀까지 연기 폭이 넓은 전천후 배우. ‘더 파더’의 홉킨스와 콜먼 부녀는 나란히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3)미녀: 어맨다 사이프리드
영화 ‘맹크’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어맨다 사이프리드는 ‘레미제라블’과 ‘맘마미아!’ 같은 뮤지컬 영화들로 국내에도 친숙한 배우. ‘맘마미아!’에서는 결혼식을 앞두고 친부(親父)를 찾아나서는 소피, ‘레미제라블’에서는 코제트 역을 맡았다. 덕분에 일찌감치 할리우드 청춘 스타의 반열에 올랐지만, 미 포르노 스타의 일대기를 다룬 ‘러브레이스’(2013)에서는 노출을 불사하며 연기폭을 넓히고 있다. 이번 후보작인 ‘맹크’에서는 언론 재벌 허스트의 연인이자 여배우인 매리언 데이비스 역을 맡았다. ‘맹크’는 올해 아카데미 최다 후보(10개 부문)에 올라 있다.
불가리아 출신의 여배우 마리아 바칼로바도 ‘보랏 속편’으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현실과 허구를 뒤섞어서 연출한 ‘모큐멘터리(Mockumentary)’라는 독특한 형식을 통해서 미 정치 현실을 풍자한 작품.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이 금발의 리포터로 변신한 바칼로바와 인터뷰하던 도중에 침실로 옮겨서 성희롱을 연상시키는 행위를 하는 장면은 개봉 직후 논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