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수상 소감을 했다. 윤여정은 전설이다(Youn is a legend).”(미 연예 매체 ‘벌처’)
영화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73)의 능수능란한 영어 수상 소감이 세계 영화계를 사로잡았다. 11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에서 열린 2021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직후였다. 한국 배우의 연기 부문 수상은 처음이다. 윤여정은 1분여 짧은 소감에서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상이 의미 있지만, 이번 수상은 특히 무척 고상한 체(snobbish)하는 것으로 알려진 영국인들에게 명배우로 인정받은 것이어서 무척 기쁘고 영광스럽다.”
윤여정은 영국인의 문화적 자긍심을 ‘고상한 척’이라는 한 단어로 풍자와 위트를 담아 표현했다. 급기야 시상식의 진행을 맡은 배우 데이비드 오옐러워(45)마저 ‘윤여정식 영어’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허리를 굽혀가며 포복절도했다. 뉴욕타임스 기자인 카일 뷰캐넌은 자신의 트위터에 “올해 시상 시즌 최고의 수상 소감”이라고 썼다. 미국 뉴욕 연예 전문지인 벌처는 “영국인들을 면전에서 ‘무척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very snobbish people)’이라고 부르면서 좌중을 모두 웃기고 반하게 만들었다. 윤여정은 전설”이라고 말했다.
‘고상한 척’은 자칫 오해를 부를 수도 있는 표현. 하지만 윤여정은 시상식 직후 현지 질의 응답에서 10여 년 전 케임브리지대에서 펠로십(fellowship)으로 머물렀던 개인적 사연을 덧붙이면서 “장구한 역사와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영 BBC는 “윤여정이 의도한 것처럼 높은 기준과 까다로운 취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미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도 윤여정의 수상 소감에 대해 “잔인할 만큼 솔직하면서도 재미있는 분석(brutally honest, funny assessment of them)”이라고 평했다. 윤여정은 이날 수상 소감에서 최근 만 99세로 별세한 필립 공(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에 대한 추모의 뜻도 빼놓지 않았다.
윤여정이 미국배우조합상에 이어서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까지 거머쥐면서, 미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미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25일(현지 시각) 미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다. ‘미나리’가 선전하면서 윤여정의 솔직한 영어 인터뷰와 수상 소감도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4일 미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직후에는 영어 소감을 말하다가 “내가 옳게 말하고 있나요? 제 영어가 맞나요?”라고 질문하는 겸손함을 보였다. 그러자 동료 배우 올리비아 콜먼이 “완벽하다(Perfect)”고 격려해주는 따스한 풍경이 연출됐다. 당시 윤여정은 글렌 클로스(‘힐빌리의 노래’)와 콜먼(‘더 파더’) 등 함께 경쟁했던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감사를 표했다.
지난달 미국 ABC 방송의 아침 간판 프로그램인 ‘굿모닝 아메리카’에서는 미국의 간판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와 비교하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윤여정은 “저를 ‘한국의 메릴 스트리프’라고 했는데, 메릴 스트리프는 정작 그 말을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영국 옵서버 인터뷰에서는 “상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새로운 일과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보상”이라고 말했다. 영미권 매체에서는 윤여정을 유력 수상 후보로 점치면서 ‘미 아카데미 수상 소감도 듣기를 바란다’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벌처는 “‘미나리'에서 보여준 빼어난 연기뿐 아니라 다음에도 우리를 (수상 소감으로)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윤여정이 오스카 상을 받기를 원한다”고 전했다.